선창가 골목에 들어서면/ 바퀴가 굴러가듯/ 세상에서 잠시 밀려난 기억이/ 눅눅하게 물렁물렁하게/ 쉬고 있는 듯한 곳// 내리던 흰 눈 그친/ 허름한 동태탕 집/ 무 밑동처럼 시원한/ 지글거리는 냄새가 오물오물/ 파도처럼 일렁이고/ 해풍이 어둠 밀쳐낸/ 오래 전 우리가 남겨 두고 간 웃음이/ 등대처럼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는 곳// 누군가는 소주잔을 비우고/ 누군가는 마주 앉아/ 억지로라도 웃어주었던/ 그 시절 안부를 묻기 위해 들어선 공간/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무심하게 따뜻했다 - 황인술, 「송년회」 전문 한 해 끝자락은 늘 이러했다. 12월 노을빛 가라앉고 바람 차가워질수록 마음은 스스로 되짚으며 조용히 태양처럼 붉어진다. 시간은 직선처럼 달려가는데, 기억 속 시간은 고대 전설처럼 자꾸 되감기며 우리를 부른다. 겨울 그림자를 밟고 서서 묻는다.
 
 “올해 내 삶에 너라는 계절이 있었는지”, “정말 기억을 잊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입으로는 잊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불쑥불쑥 나타나 사라진 날들이 있다. 먹고사는 일에 대한 무게는 나라님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농담처럼, 우리는 생존하기 위한 현실에 눌려 잠시 잊어버렸는지 모른다.셔울 발긔 다래 (서라벌 밝은 달에)밤 드리 노니다가 (밤늦도록 놀며 다니다가)드러자 자리 보곤 (들어와 자리를 보니)가라리 네히어라. (가랑이가 넷이로구나)둘은 내해엇고 (둘은 내 것이었고)들흔 뉘해언고. (둘은 누구 것인가?)본디 내해다마른 (본디 내 것이지마는)아자날 엇디하릿고. (빼앗긴 것을 어찌하겠는가.) - 처용가(8구체 향가) 24절기 중 동지에 붉은 팥죽을 먹는다. 붉은 양색을 지닌 팥죽을 쒀 먹어 귀신으로부터 몸과 집을 보호하고자 했다. 처용가를 살펴보면 역신(疫神)이 처용 아내를 범했고, 이를 목격한 처용이 노래를 부르자 두려움에 떤 역신이 도망쳤다는 설화이다. 
 
이 설화에서 역신을 용서해 주는 처용 행동에 역신은 처용 얼굴을 문에 붙여두거나 붉은 팥과 팥죽을 뿌린 집에는 얼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 약속에 의해 액운을 쫓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동지 팥죽으로 어둠 씻어내고, 새해 첫 빛을 불러들이는 의례처럼, 우리도 오래된 친구를 향해 손짓하여, 잊고 지낸 온기를 되살리려고 한다. 가슴속에 작은 불씨로 남아 있는 관계라는 신을 다시 불러내는 일일 것이다.
고대 사회 화로에 담긴 불씨는 가사 생활 중심이 되는 필수품이었으므로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나라에서도 불씨를 꺼뜨리거나 잘못 관리해 불이라도 나면 며느리는 즉시 소박맞았고 노비는 죽도록 맞을 정도로 불씨를 중시했다.
때문에 화로는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그것을 수호하는 헤스티아는 집안 전체를 수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헤스티아가 집안에 있는 불을 지키듯, 친구란 서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불을 돌보아 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갑옷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가식이라는 가면을 벗어도 수치스럽지 않은 자리. 헤라클레스가 시시포스보다 먼저 밤을 건너기 위해 짐을 잠시 내려놓듯, 우리 또한 친구 앞에서 묵직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광속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관계가 생기고, 손가락 하나로 관계가 지워진다. 마치 북유럽 민담 속 물거품 요정처럼, 오늘 만난 사람이 내일이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세계. 
 
편의와 즉흥 시대라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정이 좋다.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마음을 기울여야 하고, 계산이 깔끔하지 않은 관계. 비효율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이 오히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모습 아닐까? 생각에 잠겨본다.
이른 아침 오래된 친구와 최근 맺어진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친구는 서울에서, 누님은 곤지암 팥죽과 전통차 전문인 선녀와 나무꾼에서 보기로 했다. 
 
마치 옛 민담 속 떠돌이들이 겨울마다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일 년 상처를 털어놓고 다시 길을 떠나듯, 필자도 친구들과 누님과 잔을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하려고 하니 셀레는 마음 감출 수 없다. 
 
서로 마음에 균열을 들여다보고, “그래도 잘 견뎠다”고 건네는 짧은 위로 한마디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송년회란 거창한 이름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저 옆자리에 앉아, 지나간 계절에 남긴 그림자와 다가올 봄빛을 조금씩 나누는 의식. 신화 제의처럼 깊고, 모닥불처럼 따뜻한 시간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이할 자리에서 바쁘다고 외면했던 얼굴을 다시 바라보며, 오래된 정이라는 불씨에 작은 부채질하는 자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해 본다.
“내년에도 이런 자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