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자살률과 번아웃 지표는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열심히 살아라’는 구호 속에서 성장한 우리는 어느 순간 삶의 방향을 묻는 법을 잃었고, 성취가 쌓일수록 마음의 피로는 오히려 깊어졌다.이러한 시대적 모순 속에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정신인문치유학’ 창시자인 사공정규 교수의 메시지가 주목받고 있다. 오랫동안 ‘힐링닥터’로 활동해 온 그는 고통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삶이 던지는 본질적 질문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해왔다.사공 교수가 제시하는 정신인문치유학은 정신의학의 과학적 통찰과 인문학의 성찰적 지혜를 통합한 학문이다. 인간의 마음 경험과 관계 속 갈등, 나아가 존재의 질문을 깊이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둔다. 증상을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다움과 자기 주체성을 회복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데 목적을 둔 실천적 치유학이라는 점에서 기존 치료 패러다임과 결을 달리한다.최근 출간한 저서 '마음출구 있음 YOU TURN'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향해 간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불행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본지는 14일 사공 교수를 만나 책에 담긴 핵심 메시지와 그가 정의하는 행복의 의미를 들어봤다.◆ '마음출구 있음 YOU TURN'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사공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를 ‘속도’가 아닌 ‘방향’의 문제로 규정한다. 그는 “우리는 충분히, 아니 과도할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다”며 “문제는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라고 말했다.그가 책 제목으로 내세운 ‘YOU TURN’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 개념이다. 불행을 향해 달려온 삶의 궤도에서 멈춰 서서 방향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사공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도 그대로 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그는 이를 ‘뭉툭한 도끼날로 나무를 베는 나무꾼’에 비유한다. 잠시 멈춰 도끼날을 갈면 훨씬 수월해질 일을, 우리는 나무가 아니라 바위를 내리치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못한 채 힘만 소진하고 있다.“어릴 때부터 우리는 ‘열심히 살아라’는 말은 배웠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만약 동대구역에서 서울역으로 가야 하는데 반대 방향 기차를 탔다면 내려서 갈아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인생에서는 방향이 틀렸다는 걸 알아도 그냥 계속 달립니다.”사공 교수는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지수를 개인의 나약함이나 노력 부족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를 사회 전체가 행복이 아닌 방향에 과도하게 몰입해온 구조적 결과로 해석한다.“지금 필요한 건 더 열심히 달리는 게 아닙니다. 멈춰 서서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 일입니다. 그 질문을 던지고 방향을 바꾸는 것, 그것이 제가 말하는 ‘YOU TURN’입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행복의 정의’는 무엇입니까?사공 교수가 말하는 행복은 흔히 떠올리는 지속적인 즐거움이나 만족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정의는 오히려 불편한 전제에서 출발한다.“인생의 기본값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입니다.”그는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며, 불교에서는 이를 ‘일체개고(一切皆苦 : 인생의 무상함과 무아를 깨닫지 못하고 집착해 고통에 둘러싸여 있음)’라고 설명한다고 말한다. 늘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사공 교수는 고통을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뤄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는 고통을 ‘바다’, 인간의 삶을 ‘항해’에 비유한다. 바다를 없앨 수는 없지만, 항해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우리는 영어와 수학은 배우지만, 고통을 다루는 법은 배우지 않습니다. 바다에 사는 존재인데 수영을 배우지 않은 채 던져진 것과 같습니다.”그는 같은 고통이라도 ‘의미’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고 설명한다.“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영하 20도의 추위를 견디는 것은 분명 고통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희망을 동반합니다. 반면 의미 없이 주어진 고통은 불행을 심화시킵니다.”그가 강조하는 ‘YOU TURN’의 실천 방식은 결국 마음공부로 귀결된다. 마음공부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없애는 훈련이 아니다. 분노를 느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왜 분노가 생겼는지를 이해하고, 불안을 제거하려 하기보다 불안이 보내는 신호를 읽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그는 우울과 번아웃의 상당 부분이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같은 실패를 겪어도 어떤 사람은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성장하는 차이는 마음의 해석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그는 성과 중심 사회에서 자란 한국인에게 마음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잘하는 법은 배웠지만, 힘듦을 다루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는 말로 이를 요약한다.사공 교수가 정의하는 행복은 과정이자 능력이다. 고통을 없앤 상태가 아니라, 고통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통과할 수 있는 힘이 곧 행복이라는 설명이다.“새는 공기의 저항이 있어야 날고, 물고기는 물의 저항이 있어야 헤엄칩니다. 인간에게 고통은 성장의 저항입니다. 고통에 짓눌리면 불행이 되고, 고통을 통해 성장하면 행복이 됩니다.”사공 교수의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더 열심히 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용기를 요청한다. 지금까지의 불행이 개인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자는 것이다.그가 'YOU TURN'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 살고 있는가.”사공 교수는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더 많이 성취하는 삶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삶. 그 선택의 순간에, 마음의 출구는 이미 열려 있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다.◆ 사공정규 교수 소개사공정규 교수는 의학박사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심신의학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우울증 임상연구원과 방문교수를 역임했다.‘힐링닥터’로 널리 알려진 그는 정신의학을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독창적인 강연과 상담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전해왔다. 쌍방향 대화와 즉문즉답 형식의 강연을 통해 1000회 이상 무대에 올라 수십만 명의 삶에 긍정적 전환의 계기를 제공했으며 이러한 공로로 2023년 ‘신지식인’에 선정됐다.2013년 문장 작가상으로 등단해 '마음출구 있음 YOU TURN', '행복을 낚아주는 사공' 등 11권의 저서를 펴냈으며, 현재는 교육·공공·기업 현장에서 정신인문치유 강연을 이어가는 한편 칼럼니스트와 방송인, 국가공인 제1기 치유농업사로서 대중과의 치유적 소통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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