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영천에 소재하는 임고서원에서 교남회(嶠南會) 정기총회를 가졌다. 이 교남회는 경상북도 각 시군에서 모인 향유들의 모임으로 시 군 지구별 순번으로 매년 춘추 2회 오후에 모여 1박 2일 숙식을 함께 하며 정담을 나누고, 세미나를 해오다가 몇 년 전부터 오전에 모여 오후까지 당일 행사로 변경하여 시행해오고 있는 유림단체이다. 금년은 경주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하여야 하나, APEC 국제 행사 때문에 영천시에 소재하는 임고서원 부설 교육원에서 가지게 되었다. 회원은 정원제로 제한하였으나, 선화 혹은 자퇴로 결원이 있을 때 그 지구에서 신입회원을 추천하여 총회의 승인을 받아 충원되고 있으며, 현 회원의 연치는 70대에서 90대 후반까지이다.    전현직이 다양하여 서로 유익한 정보로 소통하고 있어서 모두가 좋은 모임으로 생각하면서 자부심을 지니고 만족해하고 있다. 금년에는 정기총회를 마치고 영천지역 문화유적지를 심방한 후 해산할 때, 경주시에서 마련한 APEC기념 선물과 영천시의 『임고서원지』 , 『영천향교지』 및 벽진이씨경은공파종회에서 발간한 『경은 이맹전 선생과 용계서원』 책자가 제공되었다. 그 외 영천시장이 청포도 한 박스를 선물로 주어서 감사하게 받았다. 향교지와 서원지는 그 지역의 중요한 사적을 담고 있어서, 모두가 반갑게 받으며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임고서원과 영천향교는 그 유래에 대해서 대략은 알고 있지만, 생육신의 한 분인 ‘경은 이맹전 선생’에 대해서는 벽진이씨 후손으로 단종조의 충신으로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이 책자는 더욱 반가웠으며, 금년 10월 20일에 출간된 신간 서책으로 567쪽의 비교적 분량이 많은 단행본이었다. 지은이는 용계서원 복원 및 생육신 복향 기념 도서편찬위원회이기에 귀한 책을 받아서 서가에 그냥 정렬해 두는 것은 예가 아니라 생각되기에 비록 시력이 밝지는 못하지만 정독해 보았다. 경은 선생의 성은 이씨. 본관은 벽진, 명은 맹전(孟專), 자가 백순, 호는 경은으로 조선 태조 원년 형곡촌에서 황고 이심지, 대부인 성주이씨 사이에서 5남 4녀 중 맏아들로 출생하였다. 선생은 1418년 28세에 성균관 생원에 입격 교지를 받아 성균관에 수학하여 1427년 36세에 친시 문과에서 을과 2등 5위에 급제하였다고 한다. 승문원 정자로 출사하여 한림원과 집현전을 거쳐 사간원 우정언에 지제교를 겸임하였으며, 소격서 영을 거쳐 중년에 세상사가 어렵고 위태로워지는 형세 때문에 1452년 외직을 자청하여 거창 현감에 도임(到任)하였다. 이때는 수양대군이 고명(誥命) 사은사(謝恩使)로 임명되어 권람, 한명회 등과 함께 권력의 실세로 부상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조정의 이런 모습을 본 경은 선생은 큰 정치적 혼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외직으로 나갔다고 한다.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재임 기간에 정사를 청렴결백하게 복무하여 청백리에 등재된 관료였다. 63세인 1454년에 사직하고 고향 망장촌에 귀한(歸閑)하여 은거 생활을 시작하였다. 귀향 이듬해인 1455년에 단종이 선위하고 세조가 즉위한 것을 거점으로 계유정란, 사육신 사건, 단종의 영월 유배와 서인(庶人) 강등 및 죽음과 같은 일련의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서 국내 정세가 매우 살벌하였다. 그래서 경은 선생은 귀향하여 임천에 살면서 집 앞의 연못을 국담, 우물을 죽정이라 명명하고 군자의 지조를 견지하며, 27년이란 세월 동안 가족도 모르게 청맹과니에 귀머거리 행세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시각과 청각 불능의 생활을 한다는 것은 조정의 출사 요청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초야에 은거하며 재능을 숨기고 살면서도 내방한 선산부사 김종직, 탁영 김일손과는 비록 연차가 각각 39년, 72년이지만 젊은 인재를 반갑게 맞이하여 대화를 나누고 시를 주고받으며 전도 양양한 젊은 인재가 참혹한 세파를 잘 극복하여 금옥 같은 면목을 잘 보전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소통한 교화의 말씀은 후진을 위한 충심(衷心)이었다고 사량(思量)된다. 집안에 앉을 때 거적자리도 없고, 식사할 때 수저조차 없었다고 하니 가난에 초연하여 청빈과 군자고궁(君子固窮)을 이겨 실천한 삶이었으며, 매월 초하루 여명에 동향배(東向拜)를 올리며 충심(忠心)을 다한 것을 자식도 그 참뜻을 몰랐다고 하니 어찌 범인이 향주단심(向主丹心)을 언급할 수 있으리. 생육신 경은 이맹전 선생의 절의를 좁은 지면에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영의정 서명선(徐命善)의 건의에 의해 정조가 1781년 9월 24일에 봉정대부 행 사간원 정언, 지제교 이맹전에게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춘추관, 성균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추증되었고, 부인 영인(令人) 김씨도 정부인에 추증되어 오늘날까지 추앙받으며 용계서원을 비롯한 여러 서원과 사당에서 봉향되고 있으니, 이는 마땅한 은전(恩典)이며, 의로운 삶의 영원성을 입증하는 사적이기에 그 절의(節義)는 유방백세 여천무궁(與天無窮) 찬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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