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피처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25)가 출간된 지 100년이 되었다. 1922년 개츠비는 데이지가 결혼해서 사는 N.Y Long Island East Egg 건너편 West Egg에 저택을 사서 토요일 밤마다 성대한 파티를 열며, 데이지가 오기를 기다린다. 제1차 대전으로 헤어진 이후 5년 만에 이들이 다시 만나고 헤어지는 운명 속에서 삶의 영광과 몰락과 허무를 그리고 있다.‘위대한 개츠비’는 두어 번 영화화 되었다. 그중 1974년에는 Robert Redford, 2013년에는 Reonardo DiCaprio가 개츠비 역으로 분했다. 후자는 개츠비의 화려한 파티가 볼거리라면, 전자는 우수와 허무를 잘 살려서 원작소설을 재현한 영화로는 전자를 들 수 있다.때는 바야흐로 미국의 경제 호황기였고 ‘Swing Jazz’의 전성시대였다. 그의 화려한 파티에는 이른바 Jazz Big Band 악단이 밤새 음악을 연주하고 샴페인은 무제한 공급되어 파티 끝무렵엔 고주망태가 아닌 사람이 없다. 군중이 다 돌아간 텅 빈 저택, 개츠비는 새벽녘 밤하늘의 별과 밤바다를 외로이 바라본다.오죽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개츠비를 주제로 한 호화 파티를 열며 ‘작은 파티 한번 한다고 아무도 죽지 않아!(A little party never kelled nobody)’라고 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1929년 미국의 호황기는 경제대공황을 만난다. 10월 24일 이른바 ‘검은 목요일’에 터지는 증시 폭락으로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난다. 이때는 미국의 ‘금주법(1919~33)’시대였고 마피아가 암흑 시장을 차지하던 시기로 개츠비는 밀주 제조업으로 벼락부자가 된 것이다. 화려한 삶 이후에 그는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 파티에서 그 많던 사람들, 그의 친구조차 그의 장례식에 오는 사람은 없다.‘로버트 레드포드(1936~2025)’보다 그 역에 맞는 배우는 없으리라! ‘스팅(The Sting, 1973)’,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1985)’,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 감독, 건달 사기꾼으로 나온 스팅에서 조차 그는 순수해 보인다. 노년작인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 주연: 로버트 레드포드, 제인 폰다, 2017)‘ 에서도 그는 천진함을 잃지 않고 있다.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의 라이벌은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였는데, 단연코 그의 인기를 잡을 수는 없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1929)’, 이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0)’는 50여만 부나 팔린다. 이어진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1952)’로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한편, 피처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로 성공을 거둔 이후에는 걸작을 만들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이 되어 1940년 사망하고 만다. 헤밍웨이도 1954년 비행기 사고로 내장을 다쳐 병석에 누워서, 노벨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그는 1961년 7월 사냥때마다 애용하던 엽총으로 자살한다.다시 보니 ‘개츠비’와 ‘노인과 바다’에 모두 메이저리그 이야기가 나온다. 개츠비에는 1919년 전설적인 월드시리즈 승부조작극, ‘노인과 바다’ 에는 아예 ‘조 디마지오(1914~99)’ 선수의 실명이 나온다. 그는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로 야구로도 유명하나 마릴린 먼로(1926~62)와의 결혼으로도 유명하다. 마침, 내년 2026년은 먼로 탄생 100년(6. 1)이 된다. 당대의 스포츠 스타와 최고 인기 여배우의 결혼은 시대의 커플로 화제였지만, 둘의 결혼은 274일 만에 파경을 맞고 만다. 1954년 어느 날 조는 마릴린의 영화 촬영 현장에 가게 되는데 그때 그녀는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1957)’을 찍고 있었고, 문제의 지하철 환풍구에서 먼로의 치마가 날리는 유명한 장면을 목도했다. 애초에 보수적인 디마지오와 자유분방한 먼로의 성향이 너무 달랐다.‘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감독 우디 엘런, 2011)’에는 이들 모두가 등장한다. 작가인 ‘길 펜더(오언 윌슨)’는 파리를 여행하는데, 자정이 되면 나타나는 검은색 푸조 차를 타고 몽마르트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평소 흠모하던 스콧과 젤다 피처제럴드 내외, 헤밍웨이, 피카소와 아드리아나, 거트루트 스타인 등 작가, 화가를 모두 만나게 된다. 영화는 ‘벨 에포크’ (La 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를 그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파리를 거져간 인물로, 당시 파리는 예술의 꽃을 피워 모든 이들이 꿈꾸는 곳이었다. 헤밍웨이는 1921년 캐나다 토론토 주간지 ‘Star Weekly’ 특파원으로 파리에 가서, 1922년 제임스 조이스와 거트루트 스타인 여사 등과 교류하였다. 특히 거트루트 스타인은 그의 간결한 문장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1925년 그는 피츠제럴드를 만나 교류하게 되고 이듬해에는 피츠제럴드가 미국의 유수 출판사와 편집자를 소개해 준다. 스콧은 나이도 세 살 연상에다 문단의 선배였다. 개츠비는 다음 문장으로 끝맺는다. -우리가 미래로 손을 뻗치면 뻗칠수록 미래는 더욱 멀어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파도에 맞서 나가는 배처럼 밀고 나가다가, 늘 과거로 다시 밀려가는 것이다(He didn’t realize that as we reach out toward the future, it moves futher away from us. So we press on, like boats against the current, and all time we are carried back into p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