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품고 있는 ‘인생 명소’가 있다면 토함산의 이웃산인 조항산 정상부에 자리한 풍력발전단지(경주시 문무대왕면 불국로 1056-185), 이른바 ‘바람의 언덕’을 추가해봐도 좋겠다. 경주시 문무대왕면 장항리에 위치한 이곳은 ‘일몰이 유난히 아름답다’는 입소문으로 번져 어느새 바쁜 일상 속에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위안처로 각인되고 있다. 토함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이 풍력발전단지는 한국동서발전과 동국 S&C가 건설한 상업용 시설로 친환경 청정에너지 생산을 목적으로 한다. 산 능선을 따라 듬성듬성 세워진 7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연간 약 4만 MWh의 전력을 생산하며 이는 1만여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이곳의 매력은 이러한 수치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철제의 거대한 바람개비들이 자연 속에서 만들어내는 풍경은 어느새 ‘발전소’라는 도식적 이미지보다는 또 다른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경주 시가지에서 차로 약 30~40분. 산 정상부까지는 경사와 커브 구간이 이어지지만 그 길마저 여행의 일부다. 불국사에서 15분여 거리라는 접근성도 매력적이다. 단지 입구에는 ‘지구를 살리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문구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이곳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풍력발전단지의 면모가 펼쳐진다. 하늘 아래 높게 솟은 풍력 터빈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모습,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커지는 발전기 소리가 들린다.
전력을 생산하는 기능은 물론 산책과 휴식, 사색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바람의 언덕. 사계절 내내 색다른 풍경을 품은 이곳은 현지인은 물론, 조용한 힐링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다.
주말이나 단풍철, 특히 유성우 예보가 있는 날이면 밤하늘의 별 궤적을 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 주차장이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사계절 내내 일반에 개방되는 이곳은 바람의 언덕이라는 이름처럼 자연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연 풍욕’의 최적 장소다. 특히 해 질 무렵이면 산 너머로 서서히 기울어가는 해와 함께 능선 위 풍력발전기의 실루엣이 장관을 연출한다.
요즘은 오후 5시 20분 경이면 일몰이 시작되는데, 붉게 물든 노을과 이국적인 풍광은 잠시 경주를 벗어난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일몰 이후에는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빛이 또 다른 무대를 열어준다. 별의 궤적을 담으려는 사진가들,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행자들이 이곳을 ‘별 명소’로 부르는 이유다.
 
이곳은 토함산 수목경관숲과 맞닿아 있어 산책로와 다양한 테마 정원을 함께 즐길 수 있고 전망대 ‘경풍루’, 수국정원 등 ‘테마 정원’, ‘바람길 산책로’, ‘피크닉 테이블 존’ 등 방문객을 위한 공간도 잘 마련돼 있다. 탁 트인 전망과 잘 갖춰진 편의시설 덕분에 이곳은 차박 명소로도 입소문을 탔다. 
 
주차장 전망 데크에서는 당일치기 ‘차크닉(차박과 피크닉의 합성어)’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과하지 않게 짐을 챙겨 가볍게 산책을 즐기고 일몰과 밤하늘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산책로는 주차장 전망 데크에서 바로 이어지는데 풍력발전기 사이를 거니는 길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자연 지형을 살려 조성된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곳곳에 마련된 작은 벤치와 정자가 잠시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벤치와 정자에 앉아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기에도 더없이 좋은 프레임이 돼 준다.낮에 찾는 바람의 언덕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천연의 구릉과 언덕을 활용해 조성된 꽃과 나무들이 사계절 각기 다른 색과 결을 드러내며 이곳을 채운다. 숲과 나무가 어우러진 발전기의 모습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밤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토함산 정상부로 오르는 길은 그 자체로 설렘이다. 은하수와 별들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음을 이곳에서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바람개비 타워다. 땅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높이 약 80m에 이르는 철제 기둥은 아래쪽 직경만 4.8m에 달한다고 한다.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구조 덕분에 고개를 한껏 들어 올려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끝없는 우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이한 착각마저 든다. 거대한 문명의 상징이자 조형물인 풍력발전기는 ‘쉬익 쉭’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저항하는 소리를 낸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소리와 움직임으로 전달해주는, 이보다 낭만적인 매개도 드물 것이다. 눈을 감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까지 느껴본다면 이 공간이 주는 위로는 더욱 깊어진다.
방문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산책로가 잘 조성돼 걷기 좋았고 주변 경치가 힐링 그 자체였다. 사진은 찍는 족족 인생샷이다”, “우연히 드라이브하다 들렀는데 바람의 언덕이라는 이름처럼 탁 트인 공기와 풍경에 가슴이 벅찼다. 여행은 이런 우연한 행운을 만나는 것 같다”, “경주를 여러 번 왔지만 여기는 처음이다. 풍경과 산책로도, 일몰까지 모두 완벽했다”는 후일담이 이어진다.
 
월성원자력본부는 매년 ‘바람의 언덕 힐클라임 대회’를 연다. 전국에서 모여든 자전거 동호인들이 한수원 본사에서 출발해 바람의 언덕을 돌아오는 라이딩이다. 바람의 언덕까지 평균 경사도는 6.2도 정도고 가장 가파른 구간은 25도 정도여서 대회 구간은 매우 평탄하고 환경이 아름답기로 전국에 소문이 나있는 코스다. 해마다 전국의 동호인 약 1000여명이 모여 즐기는 이 대회는 바람의 언덕을 알리는 중요한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겹겹이 쌓인 산 능선과 잘 정비된 산책길을 따라 약 한 시간 남짓 천천히 걷다 보면, 복잡했던 일상도 어느새 바람에 실려 흩어진다.경주의 밤하늘 별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다면 자연과 기술이 조용히 공존하는 이 언덕만큼 어울리는 곳도 드물다. 마음속 쉼표 하나가 필요할 때 바람의 언덕에 잠시 기대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