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늙어가면서 늠름해지는데 동물은 추해지잖아요. 추해지지 않으려면 묵은 틀에 얽매여 있으면 안 됩니다. 묵은 틀을 버리고 새롭게 해야 해요” 라는 이 말은 생전 법정스님의 말씀이다. 법정 스님의 이 언술처럼 우린 고정된 틀 속에 갇혀 사는 게 사실이다. 필자역시 눈만 뜨면 욕망 및 욕구의 틀에 갇히곤 한다. 어느 경우엔 그 것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안주하곤 하였다. 무엇이든 소유해야 만 직성이 풀리고, 때론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선 전력 질주하기도 했다. 필자가 이런 현상에 함몰했던 것은 겉볼안이 득세하는 시대에 살아서라면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요즘 소위 즉 간판(혹은 스펙)이 곧 그 사람 능력이라는 인식이 만연돼 있잖은가. 필자도 이런 세태에 편승했던 것 같다.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문예지에서 원고 청탁을 해 올 때 요즘은 가급적 약력을 간략하게 요구하는 문예지도 많다. 그러나 지난날엔 미주알고주알 전부 밝히곤 했었다 이렇게 쓴 게 거의 짧은 글 한 편과 맞먹는 길이었다. 돌이켜 보니 독자들에게 너무 문학적 성취를 과시 한 듯하다. 필자 딴엔 꽤 괜찮은 문인이라는 것을 은연중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싶어서 왠지 얼굴이 화끈하다. 이제야 뒤늦게 철이 드나 보다. 문인은 약력으로 독자에게 다가가선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평소에 아무리 많은 문학상을 거머쥐었어도 글이 맹탕이라면 주어진 그 문학상은 허상에 불과 해서이다. 한 줄의 시어, 한 줄의 문장일지라도 독자 가슴을 심히 흔들 수만 있다면 문인으로선 그것으로 족하잖은가. 이는 선비정신으로 글을 쓰는 게 문인이기 때문이라면 너무 외람된 생각일까? 하긴 요즘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사회적 현상은 어린이들에게도 널리 퍼지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과잉 소비는 시작 된다고나 할까. 몇 백 만 원 호가하는 유모차에 아기를 태워야 또래 부모들 중에서 체면이 선단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메이커 옷만 입혀야 무시를 안 당한다고 한다. 언제부터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과소비 삶을 누리게 했단 말인가. 물론 자식이 귀하다보니 좋은 것, 최고급만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은 이해는 한다. 다만 이런 세상에 사노라니 온통 과잉 소비이고 포식뿐인 게 문제다. 음식만 해도 그렇다. 뷔페식당엘 가면 몇 접시 씩 음식을 먹다가 쓰레기로 버려지는 게 참으로 많다. 텔레비전에선 연신 병색이 짙은 어머니 곁에서 김치 쪼가리만 놓고 라면을 먹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어린이 모습이 방영된다. 이 어린이에게 온정의 손길을 보내 달라는 호소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곤 하였다. 눈부신 경제발전이 가져다 준 풍요 이면엔 이렇듯 음습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인지 날이 갈수록 빈부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는 추세이다. 심지어 명품 가방, 명품 시계가 부정부패 온상의 매개체가 되어서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사람이 명품이어야 하지 않은가. 고가의 물건들로 온 몸을 휘감는다고 인격의 천박함이 고귀해지진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 풍요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새해엔 허례허식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내핍 삶도 필요하다. 결핍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정녕 궁핍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몇 천 원짜리 물건을 파는 가게를 일부러 출입하지 않는다. 고물가 시대에 푼돈으로 꽤 쓸 만한 잡화류를 살 수 있는 장소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곳을 피하는 이유는 ‘견물생심’ 이라고 싼 값에 혹하여 불필요한 물건을 구매할까봐 일부러 찾지 않는다. 절약과 검박한 삶을 위하여 물건을 구입 할 때도 꼭 필요한 것만 고르는 지혜를 터득했다고나 할까. 시간도 매한가지다. 묵은해와 새해를 굳이 분류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시간은 달라지는 게 있다. 하루 일과를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시간 일기를 쓰며 알차게 보내면 된다. 불과 며칠 후면 묵은해인 2025년도가 저문다. 그리고 새해인 2026년도가 밝아 온다. 새해엔 그동안 악세사리처럼 가슴에 달고 살았던 허술한 간판(?)은 없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 볼까 한다. 혹시나 있다면 이를 말끔히 보수하여 내실을 기하는 일에 노력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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