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속임수로 얻은 돈은 결국 인간을 파괴한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노쇼 사기, 리빙방 등 범죄단체에서 벌어진 고문과 가혹행위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은 탐욕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피해자들은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욕망이 놓은 덫에 걸려 희생되었다. 욕망·욕심·욕구를 삼망(三妄/ 세 가지 망령된 마음)이라 부른다. 삼망은 ‘헛된 것’을 뜻하는 한자 ‘妄’이 붙어 여러 복합된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로 인간이 진실과 본성을 잃고, 망상과 집착에 사로잡히는 세 가지 마음 흐름을 말한다.
"삼망”은 욕망이 만들어 낸 허상이며, 허상을 좇는 비극적 순환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러한 것을 깨닫는 순간, 욕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채 흐르는 것’이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집착’이자,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이다. 
 
지나친 삼망은 먹고 마시면서 얻어 들이는 에너지로 정(精 쓿은 쌀, 정미) 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정을 가리켜 후천에 대한 氣라고 한다. 먹고 마시는 후천에 의한 기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먹이 상상력 특성이 지나친 욕망·욕심·욕구를 만들어 낸다. 세 가지 망령된 마음이 만들어 낸 시스템이 한 젊은 생명을 삼켜버렸다.
이 비극은 단순한 범죄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탐욕이 만들어 낸 비극이다. 생존을 위한 욕망이 과(많을 夥)해질 때, 그것은 더 이상 생명 에너지가 아니라 타인을 소모시키는 파괴 구조로 변한다. 
 
욕망은 공동체를 움직이는 동력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욕망이 금융과 디지털 기술, 불법 네트워크와 결합해 ‘경제 신화’로 포장된다. “돈을 벌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캄보디아 범죄조직은 허상을 이용했다. 결핍, 불안, 경쟁심, 인정 욕구를 정교하게 조작했다. 사람은 불안할수록 더 큰 보상을 약속하는 거짓에 쉽게 속는다. “한 달만 일하면 천만 원.” 이 한 문장이 뇌 보상회로를 자극한다. 욕망은 이성보다 빠르게 작동한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은 스스로 속인다. 이른바 ‘합리화’ 덫이다. 그렇게 한 청년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땅’이라 믿고 간 곳은, 인간을 부품처럼 소모 시키는 지옥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시지프는 돌을 끝없이 굴려 올린다. 정상에 오를 때마다 돌은 다시 굴러떨어진다. 청년들도 비슷하다. 끝없는 경쟁과 불안 속에서 ‘성공’이라는 돌을 밀어 올린다. 
 
그러나 그 돌은 자본 논리와 탐욕 구조 속에서 언제나 다시 굴러떨어진다. 캄보디아에서 희생된 청년도 그 돌을 밀던 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가 잘못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돌을 굴리게 만든 세계다.
보이스피싱은 단지 범죄가 아니라, 욕망 코드가 왜곡된 결과다. “더 빨리, 더 쉽게, 더 많이”라는 문명 언어가 인간을 타락시킨다. 미디어는 고급 승용차, 럭셔리한 삶, 부를 성공에 대한 상징으로 반복한다. 상징이 내면에 있는 공허를 채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 욕망’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플라톤 동굴 속 그림자를 실재로 착각한 인간처럼, 우리는 빛이 아닌 거짓된 그림자를 쫓고 있는 것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욕망은 없앨 수 없다. 그것은 생명 활동 물결이자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욕망, 타인을 해치는 탐욕은 제어해야 한다. 우리가 없애야 하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이기심’이다. 청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단지 범죄조직이 벌인 잔혹함이 아니라, “돈이면 다 된다”는 문명 전체 이기심이었다.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더 많은 청년이 속아 죽어 나가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욕망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고, 인간이 욕망을 다스리는 세계, 다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캄보디아 비극은 멀리 있는 타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안 삼망이 낳은 자화상이다.
욕망이 없는 사회는 죽음이고, 절제가 없는 사회는 지옥이다. 한 청년 죽음은 경고였다. 이제 우리는 불을 훔치는 대신, 불을 다스려야 한다. 그것이 탐욕을 넘어서는 길이며, 인간이 다시 인간으로 일어서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