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둑한 동녘에서 붉은 빛이 서서히 올라올 무렵 갈기를 흩날리며 달리는 말 한 마리. 콧망울에 뿌연 입김을 뿜어내는 말의 기상에 가슴이 벅찬다. 병오년 말의 해가 떠올랐다. 병오년의 병(丙)자는 붉은색과 활기찬 에너지, 열정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를 붉은 말의 해라고 부른다.말이 지닌 가장 선명한 이미지는 단연코 역동성과 전진이다. 말의 역동성은 결과보다 과정, 안착보다 도약의 상태를 더욱 소중하게 본다. 어디에 도착할지도 중요하겠지만 땅을 박차고 떠올랐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올해 국운은 정체를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향해 돌진하기를 기대한다. 말이 상징하는 역동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다. 그림 속 말의 굽은 땅을 딛고 있지 않았다. 네 발이 공중에 떠있고 몸에는 불꽃처럼 보이는 날개를 달았다. 들판을 박차고 나아가는 말도 힘차 보이지만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마야말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착지하지 않고 공중에 떠있음으로 해서 가능성을 영원히 열어두는 희망의 표상이다.천마도에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말이 고삐를 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통제의 흔적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올해 우리 모두의 전진은 누군가가 고삐를 죄고 박차를 가하는 타의에 의한 질주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비약하는 힘을 얻기를 바란다.말띠 해는 우두커니 머뭇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보다 먼저 몸을 움직이고 계획보다 앞서 현실을 밀어붙이는 저돌성이 인정받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슬며시 조급증도 든다. 말은 뒷걸음을 치지 않는다. 고삐가 풀리는 순간 냅다 앞만 보고 뛰쳐나간다. 그 용기와 에너지가 강인한 추진력으로 변환되고 그 기운이 올해 온 나라를 감싸기 바란다.미국의 포크록 그룹인 '아메리카'(America)의 노래 가운데 ‘어 호스 위드 노 네임'(A Horse with No Name)이라는 곡이 있다. 이 노래 속의 화자는 이름 없는 말을 타고 사막을 건넌다. 딱히 정해둔 목적지도 없고 극적인 도착의 환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 ‘어디에 도착했는가’가 아니라 ‘계속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노래 속 화자가 건너고자 하는 사막은 극단적인 공간이다. 그곳에는 보호도, 설명도, 변명도 없다. 그래서 그 이동은 더욱 분명해진다. 뒤에 남길 것이 없기에 앞으로 가는 힘만 남는다. 말띠 해의 전진도 이를 닮아야 한다. 불필요한 계산과 비교를 내려놓을수록 움직임은 단순해지고 속도는 자연스럽게 붙는다.이 노래는 ‘On the first part of the journey/I was looking at all the life. 여행을 시작하면서/나는 인생 전체를 보고 있었어.’라고 시작한다. 여정의 출발점에서 앞으로 펼쳐질 여행의 공간인 사막이라는 척박한 공간을 대비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환경의 생명과 풍경을 유심히 바라본다. 이제 정체된 시간에서 벗어나 전진하고자 마음을 다지는 것이다.그리고 ‘I’ve been through the desert on a horse with no name. 나는 이름 없는 말을 타고 사막을 통과했어.’라고 말한다. 이름 없는 말은 신분·과거·평판·타인의 시선을 벗어난 존재고 화자는 이 말을 타고 목적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정체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전진을 택한 것이다. 이때의 말은 지속과 전진의 상징이다.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미 앞으로 달려 나아가기를 강요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달림의 끝은 소유가 아니라 자유다. 이름 없는 말을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노래 속 사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병오년 말띠 해에는 그 역동성으로 누군가를 앞지르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로막고 있던 한계를 넘는 과정을 착실하게 감당하기를 바란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짊어지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가볍게 만드는 선택일 수 있다.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앞을 바라보며 성실히 달리는 동안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가지런히 다듬어질 것이다. 머뭇거리지 말고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