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자동차가 개인의 자가 이동수단으로 주종을 이루지만 자동차 이전에 탈 것으로 단연히 말(馬)이 으뜸 자리에 놓일 것 같군요. 물론 옛날 그림을 보면 소를 타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소를 탄 정경은 어쩐지 속도와는 무관한 유유자적한 신선놀음이지 이동 수단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빠른 이동을 하는 데 말을 대체할 다른 동물이 없었을 것이고 그만큼 인간과의 관계가 밀접했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 언어생활 속에서 주마가편(走馬加鞭), 천고마비(天高馬肥), 견마지로(犬馬之勞) 같은 말과 관련되는 고사성어도 많고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처럼 속담류가 꽤 많습니다. 아, 또 생각나는 것이 더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 국어학자 양주동선생의 수필에서 ‘우수마발(牛溲馬勃)’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지요. ‘소 오줌이나 말똥처럼 흔한 것’이란 의미라는데, 선생이 영어를 배울 때 우리말에서는 낯선 인칭이 무어냐고 질문하니 영어선생은 1인칭은 나요, 2인칭은 너, 그 외 모든 우수마발을 3인칭이라 칭한다고 대답했다는 글을 읽고 우수마발이 참 재미난 단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대학생이 되어 처음 봤던 연극 ‘에쿠우스’도 말과 관련된 내용이군요. 당시 고(故) 강태기 배우가 부모의 억압과 광기에 짓눌리며 자라 말 7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알란으로 열연하며 인간의 심리를 다룬 이 연극은 지금까지도 반복적으로 공연되는 연극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에쿠우스’는 라틴어로 ‘말’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면 사람들은 늘 다가올 해의 간지(干支)를 새해의 소망과 결부시켜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지나가는 해가 가볍고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다가올 해의 띠가 되는 동물의 속성을 희망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겠지요. 을사년(乙巳年)이 저물고 병오년(丙午年)이 밝았습니다.    푸른 뱀은 어느덧 수풀 사이로 사라지듯 스르륵 지나가고 발굽을 울리며 붉은 말이 달려옵니다. 동양의 음양오행에 의하면 천간(天干)에서 병(丙)과 정(丁)은 붉은색을 고유의 색으로 가진다 합니다. 새해의 지지(地支)인 말(午)과 합치면 병오(丙午) 즉 붉은 말이니, 그래서 병오년 새해를 붉은 말의 해라고들 하는가 봅니다. 지난 해에도 세계는 나라 간의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미국이 자국우선주의로 돌아섬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경제가 파도 위에 뜬 배처럼 출렁대며 맥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원화 가치는 하향하는데 금값은 정신없이 뛰어 돌 잔치하는 아기들에게 금 한 돈짜리 돌 반지를 선물하던 풍속도 이제는 사라지고 있답니다.    또 지정학적 위치가 중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우리나라가 최근 이 두 나라 사이에 고조되는 긴장과 갈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걱정거리를 손꼽으려면 열 손 가락도 모자라는 게 우리네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날이 기다릴 거라는 희망을 품고 사는 것도 장삼이사(張三李四)인 우리들이지요. 그러하니 떠오는 새 해를 맞아 비나리하듯 소망을 빌어 보렵니다. 지구 위에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로 인해 생긴 난민들이 굶주리지 않으며 일상의 평화를 누릴 수 있고, 그보다 더 난민이 되어 삶터를 떠나야 하는 이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이제는 바닥을 치고 올라가면 좋겠습니다. 일자리가 많이 생겨 청년들이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기에 적절한 일자리를 쉬이 찾아 선택하고, 사회적 성취와 경제적 안정을 이룬 청년들이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이루어 그 결실로 아기들이 자꾸자꾸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붉은 말이라면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 속 장수 여포가 타던 적토마(赤兎馬)가 먼저 생각납니다. 불타는 듯한 붉은 갈기를 휘날리며 하룻밤에 천 리를 달리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군요.    새해 첫날 동남쪽 하늘에 진한 장밋빛 여명이 곱디곱게 펼쳐지더니 갑자기 쑤욱 올라오는 붉은 해를 금장대에 올라서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태양 주위로 퍼지는 황금빛 빛줄기가 너무 눈 부셔 맨눈으로 해를 보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태양 주위에 이글대는 빛무리가 달려오는 적토마의 휘날리는 붉은 갈기털이라 생각해 봤습니다. 저렇게 장엄한 기운을 뿜어내는 적토마가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려서 우리들이 새해 첫 날 기원한 소원들이 이루어지도록 견인해주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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