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정리 할 때 일이다. 책 더미 속에 묻힌 돼지 저금통을 발견했다. 묵직한 무게감이 손끝에 느껴지는 저금통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난날 친정어머니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저금통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닌 젊은 시절, 잦은 여성 편력인 아버지의 집안 부재로 온갖 세상사를 온 몸으로 막아냈다. 여자로서 분 내음 한번 제대로 풍긴 적 없이 살았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한복 바느질 일로 아버지가 비운 자리를 메웠다.    이때 돈이 벌리면 오롯이 자식들 위해 쓰는 것을 낙으로 삼았었다. 그 당시 변변한 핸드백이나 지갑 한 개 없을 만큼 자신 위해선 돈을 아꼈다. 어머니의 유일한 지갑은 속옷 주머니가 전부였다. 그 안에 천으로 기운 주머니에 항상 돈을 간수 하곤 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철 일로 기억한다. 어머니께서 밀린 육성회비를 내러 학교 교무실을 찾았었다. 마침 그 날 교무실 청소 당번이었다. 어머닌 손에 들고 온 육성회비가 부족했었는가 보다. 뒤돌아서서 한복 치마를 들어 올린 채 속옷 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때 일이다.    치마 사이로 누덕누덕 기운 내의가 언뜻 내비쳤다. 그 모습을 선생님들은 힐끗힐끗 쳐다봤다. 이를 본 필자는 청소 도구를 내팽개치고 한 걸음에 교무실을 뛰쳐나왔었다. 선생님들 앞에서 어머니의 알록달록한 천으로 기운 내의를 보인 게 너무나 창피했다. 돌이켜보니 실은 어머니의 검박한 삶과 속옷 주머니 덕에 우리 형제들이 별다른 탈 없이 성장했다. 어머니께 당신 속옷 주머니는 마치 자식들 미래를 책임지는 희망 통장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학용품 값이며 용돈 등을 늘 속옷 주머니에서 꺼내어 우리들 손에 쥐어주었다. 이런 절약과 내핍 생활을 두고 우리들은, “ 어머니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녹이 슬어 나온다.” 라고까지 말했었다.    하지만 마냥 돈 씀씀이에 인색하기만 한 어머니는 아니었다. 우린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주위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기꺼이 당신 주머니를 털곤 하였다.    그러나 평소엔 무척 돈을 소중히 여겼다. 어머니는 지난날 치매와 병환에 시달리면서도 10원 짜리 동전이라도 눈에 띄면 돼지 저금통에 넣곤 하였다. 어머니께서 지난 해 치매 및 폐암으로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어느 날이었다. 당신의 돼지 저금통 몇 개를 필자에게 내밀면서, “ 이것에 많은 돈이 들어 있단다. 이만하면 집 한 채 사고도 남을 돈이야. 너 가져가거라.” 라고 하였다.    저금통이 꽤 여러 개이고 묵직하다 보니 치매인 어머닌 큰돈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인 듯하다. 이것을 다시 대하자 생전 검소한 삶을 산 어머니 생각에 절로 눈시울이 젖는다. 어머니를 떠올리노라니 어린 날 들려주던 말씀이 문득 생각난다. “ 피땀 흘려 돈을 버는 사람이 되거라.”라고 말이다. 이 말씀이 요즘 따라 뼛속 깊이 와 닿는 것은 어인일일까.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어느 정치인들이 저지른 불미스러운 행태 소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해서이다. 사회지도자 층이라 할 그들 아닌가. 이들이 어둠 속에서 거액의 돈을 은밀히 주고받았단다. 자신이 지닌 욕심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어찌 보면 거지 본성이랄까. 이로보아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치인들 욕심 주머니는 모르긴 몰라도 그 깊이가 바다와 같지 않을까. 채우고 또 채워도 끝이 없을 듯해서다. 그러나 지난날 어머니 주머니는 생계와, 자식 양육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어머니 주머니에 대한 효용성을 논하노라니 새해를 맞이하며 받은 덕담이 떠오른다. “ 새해엔 부자 되세요”가 그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고물가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서인가. 부자가 되라는 새해 인사만큼 반가운 게 없다. 이와 달리 만약 필자가 정치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 새해엔 욕심 주머니를 탈탈 털으세요. 그래서 티끌 하나라도 남겨두지 않는 텅 빈 주머니로 만들어 주세요”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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