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야미 불개야미 잔등 부러진 불개야미.”영조·정조 시대 서민들이 남긴 사설시조(辭說時調) 속 이 한 구절은 웃음처럼 들리지만 실은 깊은 탄식에 가깝다. 양반의 언어를 빌려 삶을 노래해야 했던 민중의 처지는 이미 그 자체로 시대의 균열을 보여준다. 허리가 부러진 것은 개미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버티던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이름은 오래도록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풍경은 그 명칭이 무색하다. 예의와 도덕은 구호로 남고, 현실에서는 중심을 잃은 채 비틀거린다. 도덕의 허리가 부러졌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젊은 시절 읽었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가 떠오른다.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으나, 사회는 쉽게 이기적 방향으로 흐른다는 통찰. 그러나 막상 삶의 현장에서는 사회의 비도덕성보다 내 몸의 이상 신호가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몸이 아프면 세상은 멀어진다. 정의도, 국가도 잠시 뒷전이 된다.여기에는 순서의 문제가 있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데 공동체를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유교 경전 대학(大學)8조목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삶의 질서다. 나를 바로 세우지 못한 채 세상을 바로 세울 수는 없다.불교에서는 인간을 괴롭게 하는 근본 원인으로 탐(貪)·진(貪)·치(貪), 이른바 삼독(三毒)을 말한다. 더 가지려는 욕망·늙어서는 노욕(老欲),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치미는 분노,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이 독은 개인의 마음에서 시작되어 사회의 구조를 병들게 한다. 욕망은 합리화되고, 분노는 정의로 포장되며, 무지(無知)는 확신이 된다.도덕의 붕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안의 균형을 잃은 시간이 쌓여 오늘의 사회를 만든다. 나라의 허리가 부러진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중심이 먼저 무너진 것은 아닐까.그러나 절망만 남은 것은 아니다. 허리가 꺾인 몸도 다시 숨을 고르고 앉을 수 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욕망을 살피며, 분노를 들여다보는 일. 그 조용한 성찰(省察) 속에서 지혜의 눈은 열린다.도덕은 외쳐서 세워지지 않는다. 살려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이 다시 중심을 찾을 때, 이 사회의 허리 또한 조금씩 곧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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