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편삼절(韋編三絶)은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엮어놓은 죽간(竹簡)이 세 번이나 끊어지는 것을 뜻한다. 
 
죽간은 종이가 없던 옛날 중국에서 대나무를 잘라 납짝하게 가공하여 그 위에 글자를 쓸 수 있도록 만든 조각을 가죽끈으로 묶어 놓은 책을 말한다. 위(韋)는 다룸가죽위, 편(編)은 엮을 편, 삼(三)은 석 삼, 절(絶)은 끊을 절 즉, 위편삼절은 죽간을 엮어놓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진다는 말이다.
‘주몽’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통신수단으로 죽간을 이용하여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지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 선현들은 대나무를 이용하여 죽간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죽간에 글자를 써서 만든 책을 넘기며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그 죽간을 넘기는 과정에서 쪽들이 부딪치기 때문에 단단한 가죽끈이 훼손되어 끊어지게 된다.
그 죽간이 닳아 끊어지려면 얼마나 많이 넘기며 읽어야 할 것인가. 한 권의 죽간에 담긴 내용을 완전히 알려면 아무래도 수없이 넘겨 가며 정독을 해야 할 것이다.
공자는 위편삼절이 되도록 역경을 다독(多讀)하였다고 한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顯)’이라, 책을 백번 읽으면 뜻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하였고, ‘부가불용매양전(富家不用賣良田) 서중자유천종속(書中自有千鍾粟)’이라는 일구(一句) 역시 ‘부자가 되기 위하여 좋은 전답을 매입하는 데 돈을 쓰지 말고, 책 속에 천종의 녹(祿)이 있으니 그 돈으로 책을 싸서 읽도록 하라는 중국 황제의 권학문은 독서의 중요함을 국가 권력의 입장에서 강조한 말이다.
종(鍾)은 곡식을 계량하는 단위로서 1종은 육석서두(六石四斗)를 가리키며, 1000종은 6000석(石) 4000말(斗)에 해당하는 수없이 많은 양을 함의하고 있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습독하는 것은 학습자의 마땅한 구학적(求學的) 태도라 할 것이며, 책 속에는 무수한 가치가 존재함을 나타내는 말이라 할 것이다.
아파트 폐기물 수거장에 가보면 귀중한 책들이 깨끗한 상태로 버려진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손때가 새카맣게 착색되도록 책장을 넘기며 읽어야 할 터인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은 채 폐기물로 버려진 것을 볼 때,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컴퓨터 앞에 앉자 통신문을 교환하거나, 휴대전화를 조작하며 게임을 즐기면서 장시간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 학생들의 학습 열정이 예사로 보여지지 않는다. 문화변천에 따라 신세대들의 학습하는 방법도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책 속에 담겨있는 주옥같은 수양의 덕목은 습독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TV나 컴퓨터 등을 통해 쉽게 획득한 시청각적 정보는 주는 것만 접할 뿐이며 대체로 스쳐 가는 것들이다. 눈에 한 번 스쳐 가는 일과성 정보는 뇌리에 머물러 장기저장 되기가 어려운 것이며 피드백 해 볼 수 없으므로 정보저장이 어렵다.
요즈음 70, 80대 노인들이 치매 예방 차원에서 시나 가사를 외우거나 쓰면서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주 친구 셋집 부부가 송년 모임을 위해 감포읍 소재 회식당에서 방어회를 맛있게 먹고 밝고 깨끗한 커피숍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여담으로 고교 재학 시절에 즐겨 암송했던 김소월, 서정주, 박목월, 유치환 등 저명 시인의 ‘초혼’, ‘진달래 꽃’, ‘나그네’, ‘국화 옆에서’, ‘깃발’ 등의 시를 즐겁게 외워 보았다.
 
 60, 70년 전에 외웠던 시들이라 선명하게 완전한 문장으로 재생(再生)할 수는 없었으나 어느 정도 외울 수 있었던 것은 위편삼절은 아니었으나 당시에 반복적으로 정독했기 때문이다.
위편삼절 이 말속에 들어 있는 불가시적인 의미는 문화유산의 정수(精髓)가 책 속에 있으므로 몸을 윤택하게 하려면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독서 하라는 독서가윤신(讀書可潤身)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