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명 재상 위징은 당태종에게 자신을 충신이 아닌 양신이 되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양신은 군주에게 거룩한 천자라는 칭호를 안겨주고 자신도 이름을 얻는 신하다.
반면에 충신은 자신은 물론 기족들도 몰살을 당하고 군주에게 폭군이라는 오명을 안겨주고 자신의 이름만 후세에 전해질 뿐이다. 당태종과 위징의 일화는 양신과 충신의 의미를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다. 
 
태종이 어전회의에서 근자에 조정대신들이 국사를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라고 묻는다. 이에대해 위징은 똑같이 침묵해도 사람에 따라 이유가 다릅니다. 
 
폐하가 마음을 비우고 허심탄회하게 신하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응당 말하는 자가 있을 겁니다. 나약한 자는 속마음이 충직해도 말을 못하고 군왕의 신임을 얻지 못한자는 두려워 감히 말하지 못하고 녹봉을 생각하는 자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까 염려하여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서로 침묵하여 남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며 시간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관정요에 나오는 이야기다. 참으로 명쾌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당태종은 위징이 죽자 자신의 3가지 거울 중 하나를 잃었다고 했다. 우리 역사에도 위징이 세번 언급된다. 당태종이 안시성전투에서 눈에 화살을 맞고 퇴각을 결정하면서 위징이 있었다면 결코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거라고 후회했다. 또 삼국사기에는 진평왕 53년 631년 당에 조공을 하면서 미녀 두명을 보냈으나 태종이 위징으로부터 받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돌려보냈다는 기록이다.
계유정난으로 왕권을 차지한 세조는 한명회는 나의 장량이요 신숙주는 나의 위징이라고 했다. 이처럼 충신과 양신으로 대비되는 인물을 들자면 한명회와 신숙주의 관계를 비롯 정도전과 하륜 성삼문과 신숙주를 들 수 있다.
한명회는 수양의 계유정난을 주도하면서 김종서를 제거한데 이어 생살부로 정적들을 제거하고 세조를 옹립한 인물이다. 정도전은 명나라의 방효유처럼 군주에 의한 왕조국가가 아닌 참모에 의한 국가운영을 주장한 충신이다. 방효유는 번왕들의 세력약화를 위해 살생을 단행하며 건문제에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연왕 주체가 난을 일으켜 1402년 3대 황제 영락제로 등극하자 즉위 초안작성 제안을 거부하면서 '연나라의 도적이 제위를 찬탈했다'고 절의를 지키는 바람에 10족이 몰살당하는 화를 자초했다. 사서에는 이때 죽임을 당한 인원이 8백74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성삼문 하위지 박팽년 등은 한목숨 바친 대신 역사에 사육신이라는 이름을 남겼으나 더이상 이룬 것은 없다. 반면 신숙주는 변절자라는 오명과 함께 목숨을 부지하며 편안하게 산 인물로 명예를 잃었지만 문화적인 업적을 남겼다. 
 
또 하륜은 여말선초의 격랑을 헤쳐나오면서 7왕을 모신 재상으로 정도전과의 알력과 부침속에 태종의 비호아래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온건 개혁파라는 성향에다 뛰어난 재주와 추진력으로 서얼금고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층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유가에서는 충과 같은 개념으로 절의를 중시한다. 문제는 누구를 위한 절의냐가 중요하다. 민족과 국가를 위한 것일 때 애국자도 되고 위인도 된다. 그러나 한 개인을 위한 절의는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된다.
한명회 정도전 신숙주와 하륜에 이어 사육신들이 지켰던 절의는 누구를 향해 있었는지 무엇을 지향했는지 되새겨 봐야 한다. 양신과 충신에 이어 명군과 암군의 차이는 한마디로 군주가 밝고 어두운 것을 두루 듣는다면 명군이요 한쪽 말만 듣는다면 암군이다. 
 
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지도자는 암군이다. 오늘날의 민주사회에서도 양신과 충신이 존재하고 명군과 암군이 존재한다. 양신과 충신은 역사속의 먼 이야기가 아니라 조직내에서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때문에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역사를 알아야 하고 자신의 평가를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