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해변에서 살을 태우거나 선천적으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떠오르는 유전자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MC1R이라는 유전자입니다. 보통 이 유전자는 멜라닌 색소를 조절해 피부색을 결정하고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유전자가 단순히 피부색만 결정하는 게 아니라, 잘 낫지 않는 상처를 치료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피부 미용에만 관여하는 줄 알았던 녀석이 사실은 우리 몸의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는 수리공 역할까지 겸하고 있었던 셈입니다.오랫동안 당뇨병성 족부 궤양이나 욕창 같은 만성 상처는 의학계의 골치 아픈 난제였습니다. 상처가 아물려면 염증 반응이 적절히 일어나고 끝나야 하는데, 만성 상처는 염증 상태에 갇혀 도무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에는 이런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소독을 하고 죽은 조직을 걷어내는 방법에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만성 상처 부위에서 MC1R 신호 전달 체계가 고장 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연구진이 약물을 통해 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다시 켜주자, 멈춰있던 치유 과정이 기적처럼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이 과정은 마치 엉망이 된 공사 현장에 유능한 감독관을 다시 투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MC1R을 자극하자 상처 부위에 과도하게 몰려있던 염증 세포들이 진정되고, 새로운 혈관이 빠르게 만들어져 상처 치유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상처를 덮는 것을 넘어, 림프관 기능을 되살려 붓기를 빼고 흉터가 남지 않도록 콜라겐 배열까지 가지런히 정돈해 주었습니다. 단순히 피부색을 만드는 공장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염증을 끄고 조직을 재생시키는 정교한 시스템의 핵심 부품이었던 것입니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이 치료는 일반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회복이 더딘 당뇨병성 상처에서도 뚜렷한 효과를 보였습니다.이번 발견은 오랫동안 낫지 않는 상처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상처에 직접 바르는 방식이라 부작용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피부색을 결정하는 줄로만 알았던 유전자가 사실은 상처를 꿰매는 유능한 외과 의사였다니, 우리 몸속 유전자들은 명함에 적힌 직함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오늘 들으실 곡은 베토벤 피아노 3중주 2번입니다. 이곡는 마치 ‘작은 교향곡’처럼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 시대의 트리오 치고는 상당히 야심찬 편성입니다. 
 
첫 악장은 느린 서주로 문을 열고, 곧 가벼운 긴장과 활력이 넘치는 알레그로가 나타납니다. 전개부에서는 평행조보다 플랫 계열로 살짝 어두운 공간을 여행하다가, 재현부에서는 예상보다 한 옥타브 높게 돌아오는 의외의 전환이 매력적입니다. 
 
두 번째 악장은 E장조로 한층 서정적입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조용히 첫 주제를 들려준 뒤, 자연스러운 전조로 두 번째 주제가 이어지고, 또 다른 전조를 통해 닿는 종결구는 원조성과 한 걸음 떨어진 G장조로 살짝 빛깔이 바뀝니다. 
 
재현부에서는 다시 원조성으로 돌아오지만,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C장조로 이동해 음향의 균형을 새롭게 잡습니다. 이런 3도 관계의 움직임은 훗날 후기 작품들의 핵심적인 조성 전략으로 자주 등장하는 요소입니다. 
 
세 번째 악장 스케르초는 경쾌하고 장난기 넘치는 리듬이 살아 있습니다. 짧은 동기를 반복하며 양쪽 스케르초 부분을 자연스럽게 묶어내는 방식이 아주 베토벤답습니다. 트리오에서는 D장조와 B단조 사이를 흔들듯 오가며, 조성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긴장감을 즐기게 합니다. 
 
마지막 프레스토는 곡 전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악장입니다. 긴장 위에서 오래 머무는 전개가 이어지는데, 듣다 보면 ‘언제 풀리나’ 싶은 순간이 계속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폭발력이 강한 전개부가 기다리고 있고, 재현부는 조용히 바이올린이 등장하면서 슬며시 시작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미 전개부에서 달려온 에너지가 피아노의 반주 패턴을 통해 계속 이어지며 절묘하게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