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유품을 정리할 때이다. 어머니 장롱 서랍 속에서 수 십 년 동안 멈춰있던 시계를 발견했다. 이 시계는 필자가 중학교 입학식 때 어머니께서 입학 기념으로 사줬었다. 크기가 필자 주먹보다 작아서 참으로 앙증맞다. 스테인레스 금속 재질로 만든 원형 케이스 안에 든 시계이다. 이 시계를 어머니로부터 입학 선물로 받았을 때 무척 기뻤다.
그날 집으로 갖고 온 시계에 밧데리를 갈아 끼웠다. 그러자 이내 초침과 분침이 분주히 움직인다. 이때 소리가 매우 우렁차다. 그러고 보니 이 시계가 최근까지 수 십 여 년 간 질긴 생명줄을 이어온 셈이다.
오도카니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다시금 바라본다. 학창시절 별다른 고장 없이 필자 곁을 늘 지켜준 시계여서인가. 이 시계를 바라보노라니 왠지 감회가 새롭다. 그 시절, 이것 덕분에 3년 내내 지각, 결석 한 번 없이 학교생활에 충실할 수 있었다. 삶 속에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사는 비결을 알려주기도 했었다. 
 
지난날 이 시계를 보며 모든 일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삶의 자세를 갖출 수도 있었다. 또한 어떤 사안에 차질 없이 행하게 돼 세상사 궤도를 이탈하는 헛발질을 경계할 수 있었다. 비록 반세기가 훨씬 넘은 골동품에 가까운 시계이다. 하지만 어느 명품 시계가 결코 부럽지 않다.
명품 시계라는 단어를 논하노라니 지난 1904년 영국 왕실 최초 전속 보석상 노릇을 한 프랑스 ‘까르띠에’가 문득 떠오른다.1902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Edward) 7세가 쓸 왕관을 제작한 까르띠에 아닌가. 
 
2년 후 에드워드7세는 자신 왕관이 지닌 품질에 흡족, 까르띠에를 최초로 영국 왕실 보석상으로 임명했다. 이후 창업자 손자 까르띠에 친구인 파일럿이 비행 중 회중시계로 시간 확인이 불편하다고 불평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손자 까르띠에는 손목시계를 발명 했다. 당시에 시계라면 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회중시계가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손자 까르띠에는 이 고정관념을 과감히 깼다. 이로보아 손자 까르띠에가 생각해낸 손목시계는 그 시대엔 단연코 창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훗날 까르띠에는 이 손목시계를 창업자 손자 친구 이름을 따서 ‘산토스 듀몽(Santos-Dumot)’ 이라는 명칭으로 생산했다. 현재도 이 명칭인 ‘산토스 듀몽’이라는 시계가 판매되고 있다. 요즘 싸구려 전자시계가 판치는 세태이다. 
 
그럼에도 수 백 만 원, 수천 만 원을 호가하는 까르띠에 시계는 여전이 명품 시계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이는 까르띠에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는 고급 액세서리’로써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한 탓일 것이다.
이렇듯 까르띠에 손자가 친구인 산토스 듀몽이 지닌 불편함을 배려, 고안한 손목시계가 아니던가. 최근엔 이런 명품 시계가 그 용도와 명성을 넘어서서 뇌물로 자리하기도 했다. 전(前), 대통령 영부인과 부정부패 연결고리가 된 ‘바쉐론’ 이라는 시계가 그것이다.
그녀가 받은 시계가 명품이라서 성능은 좋을지 모르나 시간은 전자시계나 다름 없 다. 그럼에도 오로지 명품이라는 명목으로 시계를 탐하다니…. 그녀가 평소 시계에 대한 경외감을 조금치라도 느꼈더라면 아무리 명품일지언정, 이 바쉐론 시계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품 시계라는 그 자체에만 눈이 먼 듯하다. 이는 시계가 지닌 효용가치와 진정성을 외면한 처사가 아니던가.
사회적 높은 신분은 그만큼 도덕성과 책임감도 뒤따르잖은가. 그러나 그녀는 이 사실을 간과했다. 또한 가격 고하를 떠나서 명품 시계로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는 자체가 무엇보다 ‘시계’라는 물건 앞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유일한 물건이다. 시간은 그 어떤 물질로도 살 수가 없다. 시간은 역사를 만들고, 인간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시간은 우리네 삶을 주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시계는 미래의 초석을 다져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생로병사도 실은 시간이 알려주잖은가. 한낱 물건에 불과하지만 이렇듯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성을 알리는 시계 앞에서 우린 한번쯤 옷깃을 여밀 필요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닌 이 시계를 필자 중학교 입학식 때 사주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 했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서 남다른 비범함과 그릇을 갖춘 사람이 되라고 염원 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새삼 이 탁상시계를 대하노라니, 이런 어머니 소망과 달리 소인배(小人輩)로 살아온 듯하여 절로 손이 가슴에 올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