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내 아버지'라는 곡을 듣고 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으면 단순한 애교와 간청하는 노래 같지만, 눈물과 슬픔, 그리고 삶을 건 결단이 숨어 있다.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목소리 속에는 존재를 온전히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몸부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아리아를 들을 때마다 북한강 풍경이 떠오른다. 운길산역 앞에 있는 조안교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시선은 멀리 흘러가는 강물 위로 향해 있고, 바람은 차갑고 물결은 깊어 보였다. 그는 “허락해 달라, 그렇지 않다면 강에 몸을 던지겠다”며 있었던 것이다. 이 외침은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 하는 마지막 몸짓이었다. 사랑이야말로 자신을 살게 하는 힘이라 믿고 있었기에. 꽃이 다투어 피어나던 날, 산길을 걸으면. 꽃향기는 허락도 없이 다가와 옷깃을 적신다. 꽃은 그저 피어날 수밖에 없기에 피어나고, 바람은 불 수밖에 없기에 불 것이다. 사랑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계절이 돌아오듯, 사람 마음속에도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찾아와 자리를 잡는다. 그것은 작위적인 마음으로 시작되지 않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스스로 다가오는 힘이다. 여름 장맛비 속에서 젖은 흙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빗방울이 처마 끝에 모여 서로 안고 떨어지고, 골목길 바닥 작은 웅덩이에 달빛이 내려와 앉았다. 빗물을 억지로 잡아두려 해도 흘러가고, 막으려 해도 결국 스며든다. 사랑도 그렇다. 그것을 가두려 하면 병들고, 흐르게 두면 생기를 얻는다. 가을이 되면, 은행잎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바람에 날린다. 나무는 이파리를 붙잡지 않고 떠나보낸다. 떨어진 잎은 다른 곳에서 흙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붙잡을 수 없을 때조차 그 여운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겨울, 눈이 소복이 쌓인 들판에 서면 모든 것이 고요하다. 차갑고 고요한 풍경 속에서 마음은 더욱 선명해진다. 사랑은 침묵 속에서 비로소 제 본질을 드러낸다. 허락이 필요 없는, 단순하고 투명한 그리움이다. 그러나 현실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오, 사랑하는 내 아버지”라고 간청하는 이유다. 단순히 아버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권위, 제도, 전통 관습에 맞서 작은 목소리로 외치는 저항이다. 사랑이 누군가 승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녀는 울면서도 선언한다. “내 삶은 내 것이고, 내 사랑도 내 것이다.” 사랑은 선택이면서도 사회적 행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 시선을 의식한다. 특히 가족과 가까운 공동체 속에서는 사랑이 단순히 두 사람 일이 되지 못한다. 때로는 허락을 구해야 하고, 때로는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라우레타 간청은 약자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를 지키려는 최후 전략이다. 간청은 굴복이 아니라,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다른 방식에 의한 싸움인 것이다. 가끔 춘천에서 운길산역까지 약 70km, 북한강을 끼고 자전거 라이딩 한다. 강물 위로 비친 저녁 노을은 붉고, 물결은 잔잔하게 흔들린다. 그 풍경 속에서 깨닫는다. 사랑은 누구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흐르는 강물과 같다는 것을. 바위가 가로막으면 돌아서 흘러가고, 갈라진 길이 있으면 두 줄기로 나뉘어 흘러간다. 억지로 가두면 썩어 버리지만, 흐르게 두면 끝내 바다에 닿는 것처럼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막을수록 열정은 커져만 간다. 그러다 파국을 맞기고 하지만, 아무튼 자유롭게 두어야만 순수함이 살아난다. 꽃잎이 바람 따라 흩날리듯, 눈송이가 하늘에서 소리 없이 내려앉듯, 사랑은 자연스런 목소리다. 봄날 강가, 벚꽃이 강물 위로 이화우 되어 떨어지는 것을 봤다. 수많은 꽃잎이 잔잔한 흐름에 몸 맡기고 흘러가는 풍경. 꽃잎 하나하나 누군가 사랑 같았다. 잡으려 하면 흩날리고, 막으려 하면 멀어지지만, 자유로움 속에서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O mio babbino caro'는 결국 꽃잎 같은 사랑 노래다. 간청처럼 들리지만, 선언이다. 사랑은 허락받을 수 없기에, 차라리 스스로 빛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노래는 속삭인다. “사랑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사랑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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