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적 환호만큼 침묵이 길었고 무대에 섰던 만큼 삶의 현장에도 익숙했던 가수 정원영(67).
 
그의 첫 앨범은 너무 늦게 도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을 견뎌낸 목소리가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순간이었다.2025년 5월 26일 발매된 정원영의 첫 싱글 ‘시간의 그림자’는 한 음악인의 데뷔이자 귀환이며 동시에 오랜 자기 고백이다. 언더씬에서만 40여 년. 음악으로 살아왔지만 음악을 온전히 마주하지 않았던 가수 정원영이 이제야 비로소 ‘나는 음악가다’라고 대중에 말하기 시작한 지점이다.정원영의 음악 인생은 천부적 재능으로 비교적 이른 편이었다. 열일곱에 본능적으로 기타를 연주했고 열아홉이 되던 해 부산 해운대 조선비치호텔이 문을 열면서 스카웃 돼 호텔 로비 음악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경주보문관광단지가 개장했고 도쿄호텔(현 콩고드호텔)에서도 연주를 이어갔다.
 
당시 경주는 작은 도시였지만 음악적 밀도는 높았다. 음악다방과 감상실, 디스크자키들이 넘쳐나던 시절, 그는 경주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며 호텔 로비 연주를 병행했다. 그에게 음악은 삶이었고 생업이었으며 숨 쉬듯 이어지는 일상이었다.
그 무렵 그는 경주 출신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시나위의 리더 싱어였던 임재범이 활동하던 시절 무대에 객원으로 오르기도 했다.
 
정원영은 음악을 노래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경주에 민속카페 1호로 꼽히는 ‘궁상각치우’를 열어 통기타 가수들의 무대를 만들었고 윤도현·강산에 등 당대 뮤지션들을 무대에 세웠다. 또 ‘안토니오’ 음악카페를 건축하고 운영하며 작은 무대를 통해 음악을 전했다. “경주에서 내가 어떤 사업을 하면 이슈가 안 된 적이 없었다”는 말처럼 그는 경주의 대중문화와 건축 풍경을 바꾼 인물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후 울산에서 7080카페 등을 운영했고 다시 김해로 내려가면서부터는 음악을 접고 일찍이 커피 사업에 전념한다. 커피가 대중화되기 전부터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는 ‘Fall In’이라는 자체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고 음악 카페·레스토랑·복합문화공간 등 전국에 200여 개에 달하는 공간의 디자인과 건축을 맡아 다재다능한 그의 면모는 여러 문화 공간에서 방증됐다. 하지만 그 20년 동안 음악은 그의 삶에서 거의 비껴나 있었다.4~5년 전, 코로나 이전까지 형편은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돈과 사업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 무렵 코로나가 덮쳤고 그는 다시 질문 앞에 섰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고. 그때 음악생존프로그램 중 하나인 ‘싱어게인 시즌2’를 보게 되고 심사석에 앉아 있던 윤도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20년간 노래를 안 했는데 노래가 되겠어요?”라는 주변의 우려는 있었지만 후배들의 권유로 프로듀서에게 자신의 노래를 전달했고 2년 뒤 출연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사업 문제로 다시 미뤄야 했다. 결국 올해가 돼서야 도전을 결심했고 조건 중 음원 발매가 필수여서 그렇게 탄생한 곡이 ‘시간의 그림자’였다. 이 곡은 싱어송라이터 허만성이 작사·작곡을 맡았고 송문정의 섬세한 편곡이 더해졌다. 포크, 어쿠스틱 스타일의 이 곡은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과 감정이 밤이 되면 다시 찾아오는 그리움을 노래한다.
정원영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툭툭 던지는 듯한 창법과 단단한 음색은 오히려 가슴에 오래 남는다. 또 다른 수록곡 ‘Get All Right’은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서의 다짐이다. 후회 없는 선택과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고백에 다름없다.그러나 음원 등록이 지연되며 ‘싱어게인’ 예선은 이미 시작돼버렸고 그는 다시 2년을 기다리기로 했다. “2년 있으면 내가 딱 일흔이에요. 하하”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시간이 주는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오는 2월 뇌 관련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다고 전했다. “가장 미안한 건 음악을 무시했다는 거예요. 음악한테 미안하다는 감정을 처음 느꼈어요”
 
돈을 벌고 가족을 책임지고 사업을 키우는 것이 인생이라 믿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을 가장 자유롭게 했던 것은 노래였다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작은 모임에서 노래를 부르자 반응은 뜨거웠고 밀양의 음악단체에서 요청한 콘서트는 단 5일 연습으로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것이 다시 그를 무대로 불러냈다.오는 30일 오후 7시, 다시 찾은 경주의 작은 무대인 ‘우드 인 스테이’에서 그의 콘서트가 열린다. 지금도 외우고 연주하는 팝송이 300곡이 훨씬 넘는다는 그는 ‘삐삐 앙상블’과 함께할 예정이다. 이날은 난롯불 앞에 모여 음악을 듣는,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의 공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경주는 제2의 고향'이라는 그는 수술 이후 다시 경주로 다시 돌아오는 것도 고민 중이다. 경주에 자신의 음악을 소비하는 공간을 열 계획도 있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포크록이라는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동진, 어니언스, 김정호 등의 정적이고 내면에 와닿는 곡들을 다시 부르게 됐다는 그는 이제 가사를 음미하고 노래를 조심스럽게 대한다. “예전엔 음악을 돈벌이로만 알았어요. 지금은 한 곡 한 곡을 제대로 부르고 싶어요”
앞으로 그는 어쿠스틱 라이브 투어, 통기타 단체 공연, 보수를 받는 무대와 티켓을 판매하는 공연 등이 동시에 예정돼 있다. 
 
“음악을 사업으로 대하고 환호에만 취해서 음악의 소중함을 간과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노래로 돈 안 벌어도 살만 해요. 이제는 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할 수 있어서 보다 자유롭고 진지하게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정원영의 첫 앨범은 데뷔가 아니다. 긴 침묵 끝에 음악에게 건네는 사과이자 다시 걷기 시작한 한 음악인의 진성성 강한 선언이다.
그의 노래는 이제 더 이상 언더씬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세상이 그의 시간을 들을 차례다. 진정한 음악가로서 거듭 태어나 새로운 출발선상에 있는 그는 여전히 '청년'에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