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머닌 자식 교육에 가혹하리만치 엄했다. 무엇보다 여러 형제 중 유독 필자에게 그 강도가 심했다. 고백건대 필자는 어린 시절 겁이 많았다. 당시 경찰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서 잠시 두메산골에 살 때 일이다. 
 
밤이면 뒤울안에 위치한 재래식 화장실도 혼자 못 갔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갈 땐 꼭 잠자는 남동생을 흔들어 깨워서 동행 하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마철 개울가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려면 두어 개 건너뛰고는,“엄마야!” 하고 얼굴을 감싸 안은 채 제자리에 주저앉곤 했었다. 징검다리 사이로 벌건 흙탕물이 세차게 흘러가는 걸 보면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가면 어쩌나’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로보아 어린 시절 필자는 성향이 무르고 당차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필자에게 걸핏하면 주위에선 눈이 커서 겁이 많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어린 마음에 다른 아이들에 비하여 큰 눈이 왠지 싫었다.
이렇듯 겁이 많은 것도 대물림 하는 듯하다. 세 딸들도 필자의 DNA를 물려받은 게 분명하다. 딸들은 하나 같이 길가다가 땅 위에 기어 나온 지렁이만 발견해도, “엄마야!” 라고 질겁을 하며 비명을 지른다. 이런 딸들에게서 마치 필자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때마다 딸들에게 필자는 지난날 어머니께 들어온 말을 그대로 들려주곤 한다.
“ 매사 두려움을 갖지 마라.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이란다.” 라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뒤늦게 지난날 어머니의 의중을 헤아리곤 우매함을 뉘우치곤 한다. 어머닌 필자 안에 잠식하고 있는 두려움을 없애려는 의도에서 어린 날 필자를 혹독하게 대했었나 보다. 어머닌 마치 사자가 어린 새끼를 절벽에서 밀어내듯이 겁 많은 필자에게 그토록 심한 채찍질을 한 듯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캄캄한 어느 가을밤이었다. 큰 소주병을 품에 안겨주며 1킬로 남짓한 읍내에 가서 호롱불에 쓸 석유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안 그래도 땅거미만 지면 문 밖 출입도 제대로 못하는 필자 아니던가. 
 
그러나 어머니의 석유 심부름을 어기면 불호령이 떨어질게 뻔했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절대 못 간다고 버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만 하여도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큰 잘못으로 여겼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밤만 되면 방문조차 열기를 겁을 내는 깜깜한 밤, 어머니가 건네주는 필자 키만 한 소주병을 품에 안고 마지못해 대문 밖을 나섰다. 마을에서 십 여분만 걸어가면 외진 숲속에 위치한 공동묘지가 나온다. 
 
이곳을 코앞에 두고 걷노라니 지척을 분간 못할 어둠 속에서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쳤다. 소주병을 품에 꼭 껴안고 반은 눈을 감고 한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갈 때이다. 저만치 야산에서 괴이한 산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에 한 손으로 귀를 막았으나 음울한 새 울음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다리가 후둘 거리고 심장이 쿵쾅거려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 이 때 평소 어머니가 늘 타이르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 두려움을 갖지 마라. 두려움이 적이다.” 이 말씀을 생각하니 조금은 무섬증이 가시는 듯 했다. 
 
“ 그래, 나도 용감할 수 있어. 이 세상에 귀신은 없어.” 이런 생각을 하며 공동묘지 앞을 지나칠 때이다. 마음은 이렇게 야무지게 먹었지만, 걸음은 자꾸만 뒷걸음질 치는 느낌이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수많은 묘지들을 보자 도저히 걸음을 뗄 수 없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뒤에서 누군가가 필자를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모골(毛骨)이 송연했다. 묘지 속에서 금세라도 소복을 한 귀신들이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말씀을 입 속으로 주문처럼 되뇌었다. 등줄기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으로 웃옷이 축축했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공동묘지 앞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자 저만치 읍내 불빛이 가물거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빛을 대하자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뛰다시피 해서 읍내 최 씨네 석유 상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석유를 한 병 사들고 돌아설 때이다. 어둠 속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였던 것이다. 어머니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에 뛰어가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석유 병을 안고 공동묘지 앞을 지나칠 때 속으로 얼마나 어머니를 야속하게 생각했던가. 심지어는‘친 엄마가 아닌가?’ 의심도 했었다. 어머닌 필자의 나약한 심성을 염려한 나머지 평소 강단(剛斷)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석유 심부름을 강행 했던 것이다. 그러고도 걱정이 돼서 보이지 않게 필자 뒤를 따라온 어머니. 어머닌 평생 이렇듯 자식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사랑을 무한히 베풀었던 분이다.
요즘 따라 지난날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이 새삼 그립다. 그러나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안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