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나라는 예측할 수 없는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를 움직이는 돈의 흐름이 이상징조를 보이고 있고 우리를 둘러싼 대외적인 환경이 나라를 옥죄이고 있다. 환율급등이나 관세 폭탄 나아가 대미. 대중외교의 이상 징후들을 보면 국정운영의 방향을 가늠할 수 조차 없다.
내적으로는 허구헌날 특검이니 재판이니 공천비리 소식으로 도배를 하니 정작 국민이 궁금해 하는 사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관료는 있으나 행정이 없는 이상한 나라가 되고 있다.
법조소식이 큰 뉴스가 되는 상황에서 검사 판사 변호사로 일컫는 법조3륜에 의해 오히려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옳고 그름을, 맞고 틀리고를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나아가 최고 지성이라는 대학교수들이나 사회의 목탁이라는 언론까지 제 역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눈치를 보는 약삭빠름에 녹아든 결과 그들이 배운 법과 정의와 진리들이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너무나 당당하게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고 있다.
법은 평등을 전제로 함에도 빈부에 따라 판결이 다르고 권력의 유무에 따라 다르며 서울과 지방이 다르다. 막강한 변호사의 궤변식논리로 죄의 유무나 형량이 달라지고 재판속도가 달라진다. 또 죄의 유무가 확연하다 싶으면 재판지연 전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반대급부로 수임료를 챙기는 것이다. 검사와 판사는 법보다는 개인의 영달이 우선이고 종국에는 변호사로 돌아가야 하는 귀소본능으로 변호사와 동색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권력앞에 정보의 흐름이 막히고 지식이 잠을 자는 사이 동남동녀들은 우매화되고 있다. 뉴스의 가치가 훼손되고 씨잘데없는 소식조차 이해관계에 의해 메인 뉴스가 되는 오늘날의 정보왜곡은 외압탓이라기 보다는 언론자체의 모순이라고 봐야한다. 언론철학의 부재로 인해 사회의 공기가 아니라 사회를 더욱 혼란시키는 첨병으로 전락한 것이다. 언론자유의 가면뒤에 돈을 쫓는 유튜버가 자리잡듯이 언론은 권력의 입맛에 따라 감출 것은 감추고 보여줄 것만 보여주는 대변자로 오히려 유튜버를 닮아가고 있다.
파사현정이나 사회의 목탁은 고사성어에서나 찾아야 할 판이다. 무릇 인간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고귀하다. 그러기에 죽음뒤에 내리는 평가는 역사의 몫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명재상이라 일컫는 한명회가 압구정에 걸었다는 '청춘부사직 백수와강호'라는 싯구에 대해 김시습은 한 글자로 평가 절하했다. 젊어서는 나라를 일으킨게 아니라 망쳤고 늙어서는 강호를 평화롭게 한게 아니라 오염시켰다는 '청춘망사직 백수오강호'가 그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자의 면전에다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던질 줄 아는 기개가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또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모두가 내로라하는 선량들이 출사표를 던지겠지만 멍청이를 뽑던 현자를 뽑던 판단은 지역주민들의 몫이다. 백락일고처럼 좋은 말을 고를 줄 아는 지혜가 요구된다.
주민들이야 정해진 룰에 따라 참정권을 행사할 뿐이지만 선거제도는 명확해야 하며 '법대로' 운영되어야 한다. 선거의 공정성을 생명으로하는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 정보를 다루는 언론이나 선거사범을 다루는 법조계 역시 공정의 틀 안에서 굴러가야 한다.
을사오적이 영원히 비난받듯이 오늘날에도 오적은 살아서 '난행'(難行)을 저지르고 있다. 새벽이 되어도 울지 않는 닭이요, 쥐를 보고도 잡지 않는 고양이의 만행(慢行)이다. 또 도둑을 보고도 짓지 않는 개처럼 모두가 쓸모없기는 마찬가진데 죽이지도 못하고 언제까지 스스로 회개하기를 기다려야 하나. 오늘날 새삼 김부식의 아계부가 소환되는 이유가 너무나 '적확한 세상'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