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RAMSES, 재위 BC 1279~1213)와 모세(MOSES)는 역사의 영웅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유대인 시각으로 보아서 모세를 영웅시하고 상대적으로 람세스는 우둔한 인물로 묘사한다. 십계(The Ten Commamdments, 1962, 주연 찰턴 헤스턴, 율 브리너)에서도, 근래의 ‘엑소더스’(Exodus: Gods and Kings, 2014, 감독 리들리 스콧, 주연 크리스챤 베일)도 그러하다.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이집트 노예이던 히브리인을 이끌고 홍해(Red Sea)를 건너는 ‘모세의 기적’이 압권이다.작가이자 이집트 학자인 ‘크리스티앙 자크(Christian Jacq, 1947~ )’ 소설 ‘람세스’에서는 람세스를 중심으로, 그를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로 그린다. 모세는 람세스 즉위 시 이전한 수도 ‘피-람세스’의 건축가로 이후 유일신 사상에 빠진 인물로 묘사된다. 실제 룩소르와 카르나크, 아부심벨의 신전과 거석상으로 봐도 람세스는 이집트 왕조의 가장 강력한 군주임을 알 수 있다.BC 1274년 4월 카데쉬(Kadesch, 시리아 홈즈)에서 지중해 해상권과 팔레스타인 지배권을 놓고 당시 최고 문명의 이집트와 아나톨리아의 강력한 철기 제국 히타이트가 승부를 벌인다. 벽화에는 이집트가 대승한 것으로 그려져 있으나 히타이트 측 기록에 따르면 겨우 패전은 면한 듯하다. 파라오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하투실리 3세는 평화협정을 맺고 은판에 남겼는데, 히타이트에서 보관했던 조약서의 사본은 인류 최초의 쌍방 평화조약으로 현재 뉴욕 UN 본부 건물에 전시되어 있다.BC 587년 유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바빌론(이라크 바그다드)에 반역을 일으켜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사르 2세’가 유다 왕국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다. 유대의 왕 시드기야는 쇠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갔고 많은 신복 역시 그러했다. 이를 ‘바빌론 유수’라 한다(『성서』 ‘시편’ 137). 보니엠의 1978년 히트곡 ‘바빌론 강가에서 (By the River of Babylon)’는 시편을 기초로 쓰였다.오페라 ‘나부코(NABUCCO, 1842)’는 느부갓네사르의 줄임말로 왕을 모델로 그 역사를 담고 있다. 나부코는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가 29세 때 만든 작품으로 그의 시대를 연 작품이다.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에서의 데뷔작 ‘오베르토’ 이후 두 번째 작품인 ‘하루만의 왕좌’가 청중의 야유가 빗발치며 대실패한다. 거기에다 1838년 딸 비르지니아, 1839년 아들 이칠리오에 이어 1840년 부인 마르게리타까지 병사하자 그는 실의에 빠져 다시는 오페라에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극장의 임프레사리오(흥행사) 바르톨로메오 메렐리는 ‘나부코’ 대본을 주며 읽어보라고 한다. 오페라에 손을 대지 않기로 한 그는 권유에 화가 나서 대본을 탁자에 내던지는데 펼쳐진 대본에서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가라 꿈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오페라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 시대를 열게 된다. 60년 후 베르디가 타계하자, 밀라노에서는 수많은 군중이 몰렸다. 심지어 시민들은 나무 위에도 올라가 그의 운구를 보고자 했다. 이 때 거리에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울렸다. 노래는 베르디 예술의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지금도 파르마 부세토의 베르디 생가에는 방문객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그를 기억한다. 지난 1월 27일은 베르디 서거 125주기였다.BC 331년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Alexander the Great, BC 356~323)는 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를 가우가멜라(모술 북쪽 에르빌) 전투에서 압도적 전술로 승리한 후 바빌론으로 향했다. 다리우스 3세는 동쪽으로 달아났지만 박트리아의 총독 베소스의 칼에 죽고 페르시아는 멸망하고 만다. 다리우스는 마지막 순간 그를 뒤쫓던 알렉산드로스에게 포로가 된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을 잘 보살펴 주어 고맙다는 듯 손을 꼭 쥐었다고 한다. 세상 끝까지 가고자 한 알렉산드로스는 열병을 얻어 서른셋 짧은 생을 마감하는데 그가 남긴 자취는 결코 짧지 않다. 그리스 신상의 헬레니즘이 인도 페샤와르 지방의 불교 미술에 영향을 주어 간다라 미술(Gandharan Buddhism)로 불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불상은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전래되어 우리 나라 석굴암 본존불과 금강역사상에도 영향을 준다. 역사는 이렇듯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문자에서도 남겨진 쐐기문자 점토판으로 보면 당시 바빌론 지역의 설형문자가 로마제국의 영향으로 그리스 문자와 당시 유대의 문자이던 아람어 문자로 점차 바뀌어 간다. 과거의 그들도 빵과 맥주를 먹었고 노래하고 춤을 췄으며 서로 사랑하고 미워했다. 어느 역사 학자는 말헀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역사는 바꿀 수 있다’고. 이 말은 역사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해석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뜻이다. 당신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