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새해, 서울의 새벽은 무척이나 추웠다. 침대에서 나와 거실로 나서니 그러잖아도 웅크렸던 몸이 새우등처럼 굽었다. 새해 해맞이를 하러 밖으로 나가야 하는 고민을 하다 접었다. 
 
내일부터 난생처음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이 일은 내게 ‘지금까지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니 새해맞이는 사치스러운 감상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다음 날인 1월 2일, 새로운 삶이 경주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이처럼 변화는 우리에게 설렘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불안감도 찾아온다. 새로운 곳에서 그들과 함께 한지가 벌써 1년이나 흘렀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른 면을 아직도 느낀다. 나는 새로운 곳에 쳐들어온 침입자이지만, 그들은 익숙한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거주자다. 나는 공격을 잘 하지만 그들은 수성(守城)을 잘 한다. 나는 익숙함을 어려워하지만, 그들은 변화를 어려워한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나는 긴장감에 곧잘 휩싸이지만, 그들은 편한 안식처에 있는 것처럼 안정감을 가진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아직도 분명한 경계가 있다. 사회라는 조직이 형성되자 그 울타리 안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생각을 한 방향으로 정해야 했다. 울타리가 유지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결과적으로나 그 과정에 있어서 공평해야 가능했다. 이를 정의(正義)라고 하는 큰 개념의 법 등과 같은 규정이라는 틀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규정은 반드시 강제성을 수반한다. 강제성을 수반한 것이 규정이기 때문에 이는 도덕의 ‘최소한’이다. 
 
반면 도덕의 ‘최대한’도 필요하며, 이는 다른 사람의 배려와 존중의 가치가 표현되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를 매너 또는 에티켓으로 칭했다. 법과 같은 규정이 수동적이라면 매너는 능동적 도덕성이 요구된다. 즉 규정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마라’는 것이라면, 매너는 ‘남을 기분 좋게 배려하라’는 것이다. 규정과 매너는 직장에서 둘 다 “공존하기 위한 약속”이라는 점에서 뿌리가 같다. 그러나 규정이 우리 사회의 단단한 뼈대를 만든다면, 매너는 뼈대 사이를 채워주는 근육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이나 사내 규정이라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위에 매너라는 센스있는 조화가 가능할 때 비로소 직장생활이 탄탄해진다. 그런데 규정과 매너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규정은 비교적 느리게 변하지만, 매너는 더 빠르게 변한다. 예를 들어보자. 회식을 강요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같은 규정 위반이다. 원하지 않는 회식이나 음주를 강요하면 안 된다. 그런데 미리 회식 참석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매너다. 만일 못 간다면 미리 알리고, 참석했다면 분위기를 즐기면 될 뿐이다. 회식 강요와 같은 것은, 그것이 좋건 나쁘건 과거 오랫동안 유지되온 현상이었다. 회식의 참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변화된 현상이다. 지난 시절, 회식의 강제 참석은 조직에서 일종의 ‘정보 공유와 갈등 해소의 창구’라는 역할을 했기에 그 당시의 매너였다. 하지만 현재의 가치는 개인의 사생활이 존중되는 것이 매너가 되었기에 매너가 아닌 ‘침해’가 된다. 따라서 매너는 그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나타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적인 가치가 심각한 부작용을 나타내면 이에 대한 규정이 만들어지거나 변경되는 것이다. 조직에서 꼰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새로운 매너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처 변하지 못한 규정, 다시 말해 과거의 매너를 옹호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따라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기나긴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중심이었던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로 유명하다. 그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법과 정의를 절대적인 잣대로 세웠다. 문제는 법의 집행 과정에서 일말의 관용이나 매너(사회적 배려)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전의 안전 운전을 위해 종사하는 원자력 관련 조직에는 보안 경비를 하는 시큐텍(주)과 같은 조직도 있다. 우리는 꼰대 같은 생각을 하는 조직원이 없도록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규정과 매너가 잘 만들어진 직장 문화가 꽃피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조직에서 규정과 매너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라는 가변성을 전제로 한다. 이때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처럼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설명이어야 한다. 우리 몸에 붙은 군더더기가 있다면 이를 덜어내야 한다. 복잡한 설명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이는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는 한낱 핑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복잡한 설명에는 다음과 같이 응답할 필요가 있다. 천문학자 에드워드 세이건이 그의 책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말한 “훨씬 더 간단한 설명 방식이 있어요.”라고. 자연에서 빛은 서로 다른 매질을 통과하지 않는 한 굴절하지 않고 가장 짧은 경로를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