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보문관광단지의 중심에는 유독 위상을 자랑하는 한 채의 한옥 건축물이 우뚝하다. 압도적 규모의 날렵한 기와지붕은 팔작으로 날아오를 듯 치켜세워져 있고 네 면을 두른 열주는 물 위에 떠 있는 궁궐의 연회장을 연상시킨다. 전통과 현대가 맞물린 이 건물은 ‘육부촌(六部村)’이다.
 
기원전 75년, 여섯 부족이 모여 만장일치로 나라의 일을 의논하던 신라의 육부촌. 그 이름을 소환한 것은 1979년 PATA(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 총회 개최 당시였다. 관광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선포하던 격동의 시기,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시대적 의지가 경주보문단지 한복판에 이 상징적 건축물로 응결됐다.◆대한민국 관광의 출발점, 경주보문관광단지와 심장부인 육부촌
“대한민국 관광의 시작이 바로 여기입니다. 육부촌 건물이 1979년 대한민국 마이스 산업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정부가 주도해 국제회의장을 처음 짓고 최초로 유치한 현장이 이 보문단지입니다” 
지난 10일, 경북문화관광공사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육부촌에서 김남일 사장이 직접 진행한 설명에서는 국가산업유산으로서의 육부촌의 면모가 더욱 드러났다.
 
1971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 재개발을 지시하며 “웅대, 찬란, 정교, 활달, 진취, 여유, 우아, 유현의 감이 살아나도록 하라”는 친필 메모를 바탕으로 10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그 집적된 결실이 1979년 4월 6일 공식 개장한 보문관광단지였고 상징 건물이 바로 육부촌이었다. 
 
1979년 PATA총회가 서울과 경주에서 개최되며 육부촌은 국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한국은 국제회의 경험도, 제대로 된 회의장도 없었다. 세계 정상들을 맞이할 공간을 만들라는 지시에 따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관을 도입해 건립됐다고 한다. 대한민국 1호 관광단지의 1호 컨벤션센터. 이 건물은 그 자체로 국가 프로젝트였다. 육부촌은 지난해 경주 APEC 정상회의 기념공연장으로 다시 활용되며 반세기를 건너 또 한 번 세계를 맞았다.
 
◆경회루 닮은 누각, 1970년대 시대적 해법이었던 철근콘크리트 한옥 
육부촌은 한옥의 외형을 지녔지만 구조는 철근콘크리트(RC)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건축계가 모색한 ‘철근 콘크리트 한옥’의 대표적 성취로 보인다. 전통 목조건축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 기능성과 내구성을 확보하면서도 한국적 미감을 구현하려는 시대적 해법이 응축됐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외부에서는 2층 누각처럼 보인다)로 연면적 5941㎡다. 네 면에 열주를 둔 회랑 구조는 경복궁 경회루를 모티브로 삼았으며 기단·기둥·지붕의 3단 구성은 전통 한옥의 형식을 따른다. 화강석 기단 위에 콘크리트 사각 기둥이 서고 그 위에 토기와의 팔작지붕이 얹혔다.
 
권대수 미래사업전략단장은 "특히 주목할 점은 ‘칸’의 규모"라며 일반 민가의 2.7~3m 칸과는 달리, 육부촌은 3.6m 칸을 적용했다. 50년 전 목조 형식의 한옥형 건물로서는 파격적인 스케일이었다. 웅장하면서도 극도로 섬세한 디테일은 당시 최고 건축가와 기술자들의 합작품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수근을 비롯한 당대 건축계 인사들이 참여했고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국영 체제로 설계를 주도했다"고 덧붙였다.
 
청사진과 시방서는 지금도 보존돼있다. 한식 지붕, 철물 공사, 창호, 계단 모양, 조명, 익스테리어, 천장, 도장 등에까지 모든 항목이 수기로 빼곡히 적혀 있다. 오늘날의 건축 기호로 표시된 세부 도면은 그 시대 기술자들의 노력과 열정을 증언한다.◆최고급 자재와 기술의 집적, 신라의 문양 등을 현대적 해석해 조화 
육부촌 내부는 ‘한국적 아름다움에 철근 콘크리트를 더한’ 공간이다. 바닥과 벽체는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1970년대 대리석 수입이 금지된 상황에서 대통령 특별 지시로 국책 사업으로 진행됐기에 가능했다. 로비 소파와 가구, 대회의장 손잡이와 문살 장식, 샹들리에, 좌석까지 모두 최고 수준의 재료와 기술로 제작됐다. 900여 석 규모의 대회의장은 당시로선 압도적 규모였다.
 
1층 홀에서 내려오는 중앙 계단에는 레드카펫이 깔려 있고 손잡이 끝에는 귀면와 문양이 목각으로 새겨져 있다. 처마 물받침과 현관 손잡이에는 부족장 모임을 상징하는 용 문양이 새겨졌다. 벽면에는 비천상 문양이, 대회의장에는 국보 제207호 천마총의 천마도를 모티브로 한 장니 천마도 장식이 걸려있다. 내부 장식 중 화려함의 상징인 샹들리에는 신라금관을 변형해 정교하게 제작됐다. 신라의 문양과 당시 산업화의 최고 기술이 한 공간에서 공존한다.
 
내부 장식 문양들은 바닥과 벽면에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있으며 1979년 4월 11일 박정희 대통령 방문 당시 사용했던 카펫과 책상과 소파 등 내부 집기도 별다른 보수 없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또 2층 테라스에서는 보문단지 내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이는 건립 46년이 지났음에도 원형이 보존된 사례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영남대 연구용역 역시 “랜드마크 역할을 수행하기에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자산 보존해 관광 콘텐츠로 연결, 역사박물관 분관을 꿈꾸다
 
김남일 사장은 취임 직후 창고에 보관돼 있던 옛 ‘육부촌’ 간판을 다시 내걸어 산업유산에 대한 상징적 존중을 담았다. 로비 한편에는 1979년 공사 배지, 월급 봉투, 근무 일지, 당시 PATA 회의 사료, 기념 엽서 등이 전시돼 있는데, 황무지에서 관광 보국을 일군 선배들의 50년 저력을 배우자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사장은 경북도 경제통상산업실장 시절, 경북산업유산 지원 조례를 제정해 16개 산업유산을 지정한 바 있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자산을 보존해 관광 콘텐츠로 연결하려는 ‘K-인더스트리얼 헤리티지 프로젝트’도 그 연장선에 있다. 육부촌은 그 상징적 거점이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육부촌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광역사관 분관’으로 유치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문체부 ‘문화한국 2035’와 연계된 국가 프로젝트로 실현될 경우, 보문단지는 관광 기록과 체험 기능을 갖춘 국가 단위 역사 플랫폼으로 도약하게 된다.
 
오는 5월 열리는 ‘2026PATA연차총회’ 역시 육부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50여 개국 500여 명의 관광 전문가가 모여 인공지능 기반 관광 혁신 전략을 논의한다. 김남일 사장은 “오는 5월 열릴 PATA 총회를 계기로 다시, 대한민국 국제 산업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었던 우리 선배들의 열정과 저력에 누가 되지 않도록 새로운 50년을 만들어 가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육부촌은 과거의 영광을 보존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해 문을 열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휴양지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구상, 국제무대에 서고자 했던 국가적 열망, 그리고 이를 관광 자산으로 재해석하려는 오늘의 전략이 한 건물 안에 겹겹이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