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펜한국본부 경주지역위원회(회장 조기현)가 펴내는 계간 문예지 '문정문학' 통권 제4호가 출간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지면의 밀도와 기획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이번 호에선 ‘경주’라는 도시를 문학과 인문학의 두 축으로 다시 읽어내며 지역 문학의 좌표를 또렷이 새겼다. 이번 호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경주 문인이 글로 담은 경주’ 특집이다. 경주에 산다는 것, 경주를 기억한다는 것, 경주를 언어로 다시 세운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여섯 명의 필자가 각기 다른 결로 풀어낸다. 
 
김경호 시인의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묻지 않았다', 배재경 시인의 '고향을 향한 말더듬이', 황영선 시인의 '그리움을 탁본하다'는 경주라는 공간을 시적 사유로 확장한다. 여기에 배단영의 '절 없는 절', 윤지영의 '이삿짐을 풀다', 이운우의 '금오산에서 머물다 간 뿔난 토끼'가 더해지며 경주가 삶의 결이 스민 내면의 지형으로 다가온다.이번 4호의 또 하나의 축은 ‘문정인문학’이다. 특히 박재열 교수의 '단석산 명문에 대한 소고'는 신선암 명문을 통해 학술적 무게와 지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갖춘 기고로, 지역 인문학 연구의 모범적 사례로 꼽힐 만하다.정형진의 '다시 하나 되기 위한 역사인식'과 기세규의 '왕군이란!' 역시 사료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논증을 통해 역사 읽기의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창작 지면 또한 풍성하다. 점차 인기를 얻고 있는 ‘시고픈 저녁’에는 천병석의 '칼은' 외 2편, 공광규의 '별 닦는 나무' 외 2편, 김희동의 '백우도' 외 2편이 실려 각기 다른 시적 결을 선보인다.
 
‘내 영혼을 울린 시 한 편’에서는 조기현 시인이 김수영의 '가다오 나가다오'를 다시 읽으며 한국 현대시의 치열한 언어 감각을 현재의 자리로 불러낸다. 진용숙은 구림 이근식 시인의 작품 세계를 통해 선비의 지조를 조명한다. 특히 이번 호는 김성춘 시인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시선집 발간을 맞아 특집을 마련했다. 김성춘 시인의 대표작 '바하를 들으며' 외 4편을 수록하고 조기현 시인이 ‘자제하는 시인, 두 편의 무의미 시’라는 평론을 통해 그의 시 세계를 짚었다. 
 
이어 시선집 '피아노를 치는 바다'에 대한 리뷰도 실렸다. 반세기 동안 한결같이 언어의 절제와 내면의 울림을 지켜온 시인의 궤적을 되짚으며 지역 문단의 시간성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어 보인다.제4회를 맞은 ‘경주를 노래한 한국의 명시전’은 광주시인편으로 꾸며졌다. 강경호, 강대선, 김용갑, 김은하, 김종, 김효비야, 배순옥, 오소후, 이근모, 허형만 등 광주 지역 시인들이 경주와 신라 문화를 소재로 쓴 작품을 선보였다. 
 
한 지역의 시인이 다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노래하는 기획은 드문 사례로, 영호남 문학 교류의 상징적 장면을 만들어냈다. 경주 동궁월지와 대릉원 일원에서 이어진 교류 활동의 여운이 지면에도 고스란히 담겼다.회원 작품란에는 강석근 교수가 이승휴의 '제왕운기' 한 구절을 읽고 번역한 ‘송축시’를 비롯, 강창석·권순채·김성춘·김이대·박성규·배재경·이여명·조기현·조희군·진용숙·천병석·최해암·황영선·김희동·곽대기 시인의 시·시조·하이쿠가 고루 실렸다. 또 홍영지, 강순아 등 수필·동화·철학에세이·칼럼 등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지며 종합문학지의 면모를 갖췄다.조기현 회장은 발간사에서 “문정헌과 함께 경주문학이 번창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한 해 동안의 창작과 공부, 교류의 기록을 담아낸 이번 4호는 경주 문학이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한국 문학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