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저무는 오후, 낙동강에 흰 눈이 쏟아진다. 푹설이다. 낙동강문학관 소나무 다섯 그루에 흰 꽃이 아름답다. 머리에 흰 꽃을 가진 한 여자를 생각했다. 유미다. 시청률 고공해진을 달리는 미스트롯4 무대에서 흰 꽃을 불살랐던 여자
흰머리 염색을 처음 시작한 무렵부터 그녀는 흰 꽃을 만지작거렸을 것이다. 흰 꽃을 만지작거리며 단단한 울음을 준비했을 것이다. 노래의 전반부처럼 낮게 깔리지만 물 속으로 온몸을 던지며 강물에 쏟아지는 눈 소리를 오래 연구했을 것이다.흰 꽃은 괴성에 가까운 가창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원곡자가 김연자니 쉬운 노래는 결코 아닐 것이다. 강물에 눈이 내리듯 물이라는 건반에 발을 정확하게 내디디며 잔잔하게 시작해서 강물처럼 흐르다가 마침내 바다에 온몸을 쏟아 붓고 ‘흰 꽃이 지지를 않아, 흰 꽃은 지지를 않아!’ 외치면서 바다에 안착하는 공연이었다.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흰 꽃이 피었습니다. 아아아 당신 머리에 또 한송이 피었습니다.
  밤낮으로 남편걱정 오매불망 자식걱정 눈물이 소금되어 아아아 돌릴 수 없이 새하얗게 새버린 세월 흰 꽃이 지지를 않아 흰 꽃이 지지를 않아[장르 트로트 작사 작곡 알고 보니, 혼수상태 원곡 김연자 노래 유미]알고 보니 이 노래는 나 같은 트로트 초보자를 혼수상태로 빠뜨리는 마술을 가진 뛰어난 작사 작곡자의 노래였다. 걱정으로 눈물이 마르고 백발이 된 우리들의 어머니를 모시는 노래렸다.문제는 지지 않는 흰 꽃에 있다. 아무 빛깔도 가지지 않은 흰 꽃은 존재와 향기만으로 벌과 나비를 부르는 꽃이다. 존재의 의미를 다하는 꽃이다. 들국화가 그렇고 이제 곧 문을 여는 벚꽃도 흰 꽃이다. 꽃으로서의 자존감이 강하기 때문에 굳이 빨강 노랑 연분홍의 입술을 고집하지 않는다. 흰색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그네 빛깔이다. 동시에 모든 색의 힘을 합한 공(空)의 빛깔이다. 노래를 시작하는 유미는 아무 생각 없이 오직 개화에만 몰두하는 꽃이었다. 나는 잠시 작두에 올라서기 전에 온몸에 트롯의 신을 부르는 백발의 무녀를 바라보았다. 한 음 한 음에 정확하고 적확한 감정과 빛깔이 들어가 있는 1절이었다. 간주와 함께 하늘을 향하여 흐느적거리는 무녀를 다시 보았다. 그것은 노래였고 접신한 무녀가 하늘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춤이었다.
  환청일까? 착시일까? 전통 트롯의 몸으로 바뀐 그녀가 툭툭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흰 꽃이 피었습니다. 아아아 당신 머리에 또 한 송이 피었습니다.’라는 2절에서는 유미의 머리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았다. 유미의 어머님도 ‘오매불망 자식 걱정, 눈물이 소금되어… 새하얗게 새버린 세월’이 있었을까? 흰 꽃을 완벽하게 부르는 딸을 가진 어머님은 이제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우째, 저런 딸을 낳았을까?’상사화를 부를 때도 그 어떤 노래를 부를 때도 유미는 보통이 아니었다. 상사화를 부를 때는 상사화가 되고 흰 꽃을 부를 때는 흰 꽃이 되는 유미를 만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낙동강 변에서 강물을 향하여 쏟아지는 흰 눈을 바라본다. 흰 꽃이 눈부시게 뛰어 내린다. 마찰력에 의해 뜨거워지는 강물은 알고 있을 것이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가창력이나 단순한 기술이 전부가 아니라 잘 참고 잘 견디어낸 꽃만이 가진 그 무엇이 있어 완성된다는 것을 그래, 아름다운 소녀 유미는 지금 외치고 있다.흰 꽃은 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