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향기 은은한 경주 남산 자락에서 우리 문학사의 첫 장을 연 인물을 기리는 제례가 올해도 변함없이 엄숙하게 이어졌다.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 탄생을 기념하는 제14회 매월당 김시습 ‘금오신화제(金鰲新話祭)’가 지난달 26일 경주 남산 용장마을 주차장 내 ‘금오신화 공간’에서 봉행됐다. 
 
‘금오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관한 이날 행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집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의 문학적 공적을 기리기 위한 자리다.해마다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는 2월 말께 열리는 이 행사는 2013년부터 계속돼 올해로 14회를 맞았다. 향토사학자이자 시인인 권순채 씨의 주선으로 전국의 문학인과 유학자, 문화예술인, 시민들이 경주 남산 용장사 터를 찾고 있다.이날 제례는 ‘금오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 유가의 전통 제례 형식에 따라 진행됐다. 초헌·아헌·종헌의 삼헌과 독축 순으로 봉행되며 김시습의 학덕과 문학적 업적을 기렸다.초헌관은 최영하 대구대 명예교수회회장이, 아헌관은 김두루한 한국땅이름학회장이, 종헌관은 박천익 행복문학회장이 맡았으며 축관은 김윤정 전 동아대 교수가 맡아 제의를 도왔다. 이날 행사에는 김두루한 한국땅이름학회장, 박천익 행복문학회장, 최영하 대구대 명예교수 등과 시민과 문화예술인 등 20여 명이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독축문에는 “이곳 용장사에 오시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전해오기에 그 뜻을 기리어 해마다 ‘매월당 금오신화제’를 지내고 있사오니 님이시여 흠향하옵소서”라는 내용이 담겨 매월당의 문학 정신을 기리는 마음을 전했다.
김시습이 지은 '금오신화'는 한국 전기체소설(傳奇體小說)의 효시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한문 소설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이자 천재로 불렸던 김시습은 단종 폐위를 계기로 벼슬길을 버리고 방랑의 길에 올랐다. 전국을 유랑하던 그의 생애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문 곳이 바로 경주였다.김시습은 31세이던 1465년(세조 11년)부터 경주 금오산, 곧 경주 남산 용장사에 금오산실을 짓고 ‘설잠’이라는 법명으로 7년여를 머물렀다. 이 시기 그는 '금오신화'를 집필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산의 고즈넉한 산세와 용장사 터의 깊은 적막은 그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운 토양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금오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국의 문학인과 유학자, 문화예술인,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매화가 피기 시작하는 2월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제를 올려왔다. 화려한 형식이나 외형보다 문학적 정신을 기리는 마음에 방점을 둔 소박한 제례다.권순채 씨는 자신이 쓴 시 '매화 향기 속의 님과 함께'에서 “은은한 솔빛에 / 용장사탑은 하늘에 닿을 듯 // 부처님의 은은한 미소에 / 용장사 옛터에 님의 향기 스며들고//… 금오신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어른거림 / 매화 향기 속에 노닐다가 / 님과 함께 / 저 하늘의 구름과 / 함께 사라져가네”라고 노래했다.권 씨는 “매년 별다른 꾸밈 없이 격식도 미흡하고 차림도 허술하지만,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이곳 용장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업적을 기리고 있다. 20회까지는 제가 주축이 돼 봉행하도록 노력하고 이후 후진에게 이 행사를 잇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석자 명단, 축문, 헌관 및 소감문 등을 엮어 해마다 한 권씩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1회용 행사가 아니라 이 시대 표본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다. 이후 그간 지내온 과정을 '매월당 김시습 금오신화제 기념집'으로 펴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