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 귀퉁이에서/...울고, 새가 갔다.//'   등단 52년을 지나는 세월 동안 서정시의 길을 걸어온 김성춘 시인이 열다섯 번째 시집  '새가 울고 갔다(시와반시)'를 펴냈다. 지난 10일 한 카페에서 만난 팔순을 넘긴 노경의 시인은 변치않는 에스프리를 통한 귀족적 문학가의 풍모가 여전했다. 시인에게서 이번 시집 발간과 그간의 시창작에 대해 들어보았다.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모두 61편의 시가 세 개의 부로 나눠 실렸다. 그의 시는 여전히 조용하지만 깊다. 마치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는 배롱나무 꽃 우듬지처럼 사소한 풍경 속에서 통렬한 성찰을 통해 삶의 근원을 묻는다. '그런데 새똥 한 점이 왜 따스하지요? 산사의 범종소리는 왜 둥글지요?' 시인의 질문은 단순한 사물의 묘사를 넘어 존재의 근원으로 향한다. 그 질문의 끝에서 독자는 결국 한 인간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김성춘 시인은 1974년 시 전문지 심상을 통해 등단했다. 창간호에 실린 그의 작품은 당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등단 추천자는 한국 현대시의 거목인 박목월, 박남수, 김종길이었다. 특히 박목월 시인은 등단 이후 그를 각별히 아꼈다. 당선후 문학 행사에 직접 참석해 축하를 전할 만큼 깊은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김성춘 시인은 그 시절을 이렇게 떠올린다. “당시에는 시 전문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심상’ 창간 자체가 큰 사건이었지요. 누가 1회 등단자가 될지 문단의 관심이 컸는데, 울산에서 올라온 무명 청년이 등장했다고 모두들 놀랐습니다”   그의 문학적 성장 과정에서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시인 오규원이다. 김 시인은 습작 시절 문학청년이었던 오규원에게서 이미지 처리와 시의 행간을 다듬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김성춘 시인의 시 세계는 ‘바다’에서 출발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파도와 바람, 광막한 수평선을 몸으로 체득했다. 울산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방어진과 정자 일대의 바다 풍경이 그의 시적 배경이 됐다. “바다의 출렁임과 광활함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 시에는 바다 이미지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경주로 옮긴 뒤 그의 시 세계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왕릉과 폐사지, 남산의 불상과 달빛이 바다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독특한 서정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경주에 와서 왕릉을 보니 고래등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다의 기억과 신라의 역사가 겹쳐지면서 새로운 시의 풍경이 생겼지요”   시인에게 경주는 상상력의 모태로 작동하는 도시다. “왕릉도 시가 되고 폐사지도 시가 됩니다. 달빛도 시가 되는 곳이지요. 시인에게는 축복 같은 도시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시단은 모더니즘과 실험시, 다양한 문학적 흐름을 겪었다. 그러나 김성춘 시인이 끝까지 붙잡은 것은 ‘서정’이었다. “시는 서정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시의 본령은 결국 서정입니다” 이번 시집의 시 '봄 편지'는 서정의 절정이다. '...당신이 없어도 이 봄, 누가 기억하리오/ 당신 없이도 봄이 왔다 봄이 떠나고/ 바람은 먼 곳에서 다시 오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나는/ 먼 계절을 부릅니다./ 당신 없어도/ 오늘 산다화 붉은 한 통/ 당신 창 앞으로 택배로 띄웁니다.// 사랑합니다사랑할것입니다!// -'봄 편지' 중에서.   그는 자신의 시적 계보를 김소월과 박목월로 이어지는 전통 서정시의 흐름에 두고 있다. “시의 중심에는 인간의 감정과 삶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서정이지요” 그래서 그의 시에는 거창한 담론보다 작은 풍경과 감정이 자주 등장한다. 유적지, 배롱나무 꽃, 밤이슬, 길고양이, 오래된 나무 같은 존재들이 그의 시에서 조용히 숨 쉰다.   김성춘 시인의 창작 철학은 간결하다. “시는 너무 잘 쓰려고 하면 오히려 안 됩니다” 그는 시를 쓰는 태도를 투수의 투구에 비유한다. “투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공이 제대로 가지 않듯, 시도 긴장을 풀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시와 산문의 차이는 ‘압축된 리듬’에 있다고 말한다. 시는 생략과 압축을 통해 운율을 만든다. 그래서 그는 시를 쓸 때 조사 등의 토시를 최대한 줄인다. 이러한 리듬 감각은 젊은 시절 즐겨 읽었던 소월 시의 운율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팔순을 넘긴 지금 이번 시집에는 죽음과 노년에 대한 성찰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간에 비해 다소 이질적이지만 ‘죽음’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표제시를 비롯, 특히 ‘해질 무렵’, ‘강아지 풀’, ‘사족’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시인 나태주는 ‘목련의 귀’를 꼽으며 사랑스러운 에로티시즘적 묘사가 탁월하다고 전했고 시인 오세영은 ‘봄 편지’를 꼽았다고 한다.   이번 시집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울고, 새가 갔다’는 이러한 시인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변했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평론가 김재홍은 이 작품에 대해 “구조적으로도 기교적으로도 빈틈을 찾을 수 없으며 시의 또한 막중하다”고 평가했다.   김성춘 시인은 지금까지 시집 ‘물소리 천사’, ‘방어진 시편’, ‘길 위의 피아노’ 등 15권의 시집과 산문집 ‘경주에 말을 걸다’를 펴냈다. 또 최계락 문학상, 바움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서정시의 중요한 흐름을 이어왔다.   지금도 여전히 시를 쓰고 있는 노시인은 후배 문인들에게 거창한 조언을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삶을 노래하면 된다”고 주문한다. 그에게 삶은 여행이고 시는 그 여행의 기록에 다름없다. “삶은 매일 낯선 여행입니다. 그 여행이 바로 천국이고요” 최근 불의의 낙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푸른 서정의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인터뷰 말미 즈음, 띄엄띄엄 쉬어가면서 나직이 시인은 말했다.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력이 있는 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라면서 “친구를 더 사랑하고 책도 더 많이 읽고...,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더 사랑하면서요”라고 덧붙였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