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간에서 꽤 핫하다는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단종이 죽은 후 자기 목숨을 걸고 소년왕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엄홍도란 인물의 이야기랍니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끝내 목숨까지도 빼앗긴 소년왕의 이야기라면 영화의 분위기가 꽤 어둡겠다는 예상과 달리 비극의 주인공인 단종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캐릭터가 희극적이어서 나름 색다른 면이 있더군요. 
 
비운의 왕인 단종이나 피바람을 일으키며 왕위를 얻은 세조나 캐릭터의 명암이 극단적으로 선명하다보니 지금까지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심지어 자신의 혈육인 조카에게마저 죽음을 내린 피의 댓가로 왕위에 올랐으니, 세조에게 덮씌인 악인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심한 것은 아니겠지요. 
 
반대로 왕이 된 세조가 법전을 편찬하여 법 체계를 세우고 공신들에게 휘둘리던 왕권을 강화하고 조선의 토대를 굳건하게 하는 등 왕으로서의 치적이 꽤 크다는 긍정적 평가도 동시에 존재하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만으로는 인간이라는 입체적 존재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혹은 악한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논쟁되어 온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피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기보다 악한 쪽으로 기우는 듯 싶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삭의 아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서 형에게 갈 장자권을 도둑질합니다. 고대에는 전쟁이 나면 승리한 쪽은 패배한 쪽을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죽이고 불 질러 모조리 태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니와 패배한 쪽의 아녀자들을 성적으로 유린하고 물건처럼 나눠 갖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더군요. 
 
진시황릉을 짓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왕릉 조성에 투입된 일꾼들을 모조리 죽여 매장시켰다는 이야기, 검투사 노예들이 서로 싸워 죽고 죽이는 것을 구경거리로 보고 즐겼다는 로마인들, 2차 대전 때 히틀러가 유태인들에게 행한 필설로 표현하기도 힘든 만행 등, 이런 역사적 사례를 읽으면 인간은 그 어떤 동물의 것보다 잔인한 속성을 가진 듯 보입니다.
그렇지만 맹자는 인간은 본디 선(善)을 선택하는 입장이라고 하며 성선설(性善說)을 말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이 부모와의 친소관계나 구하는 행위에 따라올 이득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려는 성선설이란 인간은 오직 선함만을 타고 태어난 선한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라 선한 존재가 될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본래 인간의 마음 속에는 선과 악의 씨앗이 같이 존재하므로 수양과 교육으로 내면의 선한 인성을 선택하여 꾸준히 쌓아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수양을 방해하는 문제가 외적 요인, 즉 사회나 시스템에 있다면 그 외적 요인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선과 악의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국한하지 않고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오래된 가르침이 있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흰 늑대와 검은 늑대가 각각 한 마리씩 사는데 나중에 어느 늑대가 살아남을지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한답니다. 
 
자기가 먹이를 주고 돌보는 늑대가 살아남아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된다고 가르친답니다. 흰 늑대와 검은 늑대에 빗대어 말하려는 것이 선과 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다면적인 세상에서 옳다 그르다, 선하다 악하다, 좋다 나쁘다를 칼로 두부모 자르듯 쉽게 재단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타자를 함부로 단정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만,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잘못도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이 서로를 향해서 엄청난 무기를 퍼부어대며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쉽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요. 전쟁의 이면에 얽히고설킨 각국의 이해관계를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니까요. 
 
이런 와중에 미국측의 오폭으로 이란의 한 초등학교에 미사일이 떨어져 수업 중이던 여자 초등학생 170여 명이 한꺼번에 사망했다는 비극인적 소식이 들립니다. 전쟁과는 아무 관련 없는 어린 소녀들을 미사일로 집단 살상한 것은 어떠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악행이며 명백한 전쟁 범죄입니다. 
 
더구나 폭격 후에도 오폭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란에 덤터기를 씌우며 미국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가 국제사회의 여론에 밀려 잘 모르겠다고 말을 바꾸는 미국측의 변명이 참으로 비열하고 지질하게 들립니다.
전쟁이라는 말은 그 안에 분노, 폭력, 살상, 죽음, 파괴 따위의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이미 악(惡)입니다. 전쟁은 교전에 직접 투입되는 군인들만이 아니라 양측 국민들 모두를, 특히 가장 취약한 어린이들을 전쟁의 피해자로 내몹니다. 
 
더구나 명분조차 없는 전쟁은 그것을 일으킨 몇몇 당사자가 그들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고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범죄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