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 건축사무소에서 3년 반 동안 일하며 경험을 쌓은 건축가 김중업(1922~88)은 1956년 귀국한다. 프랑스에서 온 그가 맡은 프로젝트는 대학교 설계였다. 건국대학교 도서관(1958, 현 언어교육원)을 시작으로 부산대학교 본관(1959, 현 인문관), 서강대학교 본관(1960)을 남긴다.부산대학교 인문관 중심부의 벽체는 빛과 어둠이 퍼즐처럼 구성되어 학생들이 사색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를 유도하는 공간이었다. 제주대학교 본관(69)은 보존 예산 문제로 95년 7월 어이없이 철거되었는데 지금도 복원 논란이 되고 있다.서산부인과(66, 현 아리움 사옥, 광희문 옆)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 생명을 잉태하는 하나의 기호로 시각화된다. 조형은 성적 은유를 주제로 유기적 형태로 나타난다. 건축가 김중업은 정치인 김종필에게 워커힐 호텔 설계를 제안받았을 때 ‘건축가는 그런 거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워커힐 호텔은 1964년 김수근이 설계하게 된다. 이후 김수근은 김종필과 인연을 맺고 다양한 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방송한 KBS 다큐인사이트 ‘자화상, 중업(’22. 4 .7)’에는 김중업의 첫째 아들이자 ‘김중업건축사무소’ 대표인 건축가 김희조가 등장했다. 그는 선친이 ‘박정희 군사 정권에서 요구하는 여의도 광장 계획 등이 본인의 건축관과 맞지 않아 결국 다시 프랑스로 출국하게 된다’고 밝혔다. 직선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기하학적 곡선을 좋아하던 그에게 획일적 군사 문화는 애초에 생태가 맞지 않았다. 정부의 도시 개발을 비판하며 불편한 관계가 된 김중업은 1971년 강제 출국하여 79년에야 귀국하게 된다. 김중업의 대표작으로는 한옥의 지붕을 표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62)과 올림픽 상징 조형물 평화의 문(88)이 있고, 삼일빌딩(70, 현 SK사옥)이 있다. 김수근(1931~86)이 설계한 국립부여박물관(67)은 ‘일본신사: 백제문화’ 논란으로 1967년 8~9월 동아일보 공방이 계속된다. 이때 김중업도 ‘지극히 일본적’이라고 비판하여 둘의 관계는 충돌로 시작되었다.서울시의 세운상가(68) 재계발계획이 논란이다. 세운상가 자체가 북악산-종묘-퇴계로를 잇는 1km 서울의 축이자 청개천과도 연결된다. 당시 슬럼화된 이 곳을 ‘불도저’ 서울시장 김현옥은 대형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안을 대통령 박정희에게 제출했다. 내친김에 ‘세(世)계의 운(運)이 모인다’는 개발 시대다운 이름까지 지어 올린다. 설계자는 김수근이었다.지난 2월 가본 세운상가는 좁은 상가가 이어져 시대에 맞지는 않았다. 1월 방영된 PD수첩 ‘서울시장과 녹지축 사업(1. 6)’에도 주로 상인들의 상권과 보상금을 다루었다. 보상을 위해 고층으로 재개발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종묘’의 경관이 우려된다.김수근과 뗄 수 없는 것이 공간 사옥(77, 현 아라리오뮤지엄)이다. 창덕궁 옆 검정 벽돌 건물에 흰 글자 ‘空間 SPACE’와 푸른 넝쿨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건물을 설계한 시기에 그는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옥의 요소를 현대 건축에 담고자 시도했다. 사옥은 이후 2대 대표 장세양이 설계한 유리 사옥, 3대 대표 이상림이 개축한 한옥과 서로 다른 듯 조화를 이룬다.건축은 닮은 꼴인 남영동 대공분실(76, 현 민주인권기념관)을 떠오르게 한다. 이곳은 그가 작고한 이듬해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87. 1. 14, 509호실)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그가 설계할 때 용도를 알았는지는 알려진 바는 없다.김수근의 대표작으로는 경동교회(81), 불광동 성당(86), 대학로 아르코미술관(79)과 아르코예술극장(81)을 꼽는다. 모두 벽돌 건물이다.진주 남강을 사이에 두고 두 거장이 설계한 두 건축물 경남문화예술회관(88)과 국립진주박물관(84)은 묘하다. 거리는 약 1km 남짓. 경남문화예술회관 앞 남강이 보이는 절벽 ‘뒤벼리(뒤 벼랑)’가 인상적이다. 김중업도 눈여겨 봤으리라. 국립진주박물관은 ‘진주성’ 내에 있어서 낮게 앉혔다.김수근의 업적은 뚜렷하다. 현대 서울을 만든 사람이자 한국의 전통을 바탕으로 공간에 대한 개념을 제안했다. 그의 건축 사무소에서 유명 건축가들이 배출되었다. 1966년부터 발행한 건축잡지 ‘공간’은 여전히 발행 중이다.필자가 본 김중업 건축은 시요 찬가이고, 김수근 건축은 벽돌에 남겨진 빛과 그림자의 철학이었다. 김중업의 그림이 추상적이라면, 김수근의 그림은 논리적이다. 김중업의 노력은 개인적이어서 외롭고 힘들었다면, 김수근의 행동은 조직적이며 타협적이었다. 김중업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고 김수근은 시대를 만난 인물이었다. 한국 건축이 이 둘을 가졌다는 건 큰 축복이다. 오늘도 그들 작품에 빛이 머물고 바람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