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물질과 빛이라는 구체적 감각으로 번역해 절묘한 균형을 만들어낸 전시가 열린다. 
 
봄 풍경 속, 불국사 인근의 조용한 전시공간 갤러리 아래헌(관장 박종래)에서 4월 18일까지 열릴 허윤민 개인전 'Hours'는 ‘붙잡힌 시간’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자리다. 빛이 스치고 사라지는 찰나, 물질이 오랜 시간 견뎌 만들어낸 결을 통해 작가는 시간의 두 얼굴, 즉 흐름과 정지를 동시에 호출한다.
이번 전시는 회화와 오브제 약 40여 점으로 구성되며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물질과 빛이라는 구체적 감각으로 읽어낸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도시 경주라는 장소성 또한 전시의 서사를 깊게 만든다. 빠르게 스쳐가는 현재와 축적된 시간의 층위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작품들은 시간은 과연 흘러가는 것인지, 혹은 붙잡힐 수 있는 것인지를 묻는다. 전시는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먼저 ‘이름 없는 광물들’ 연작은 보석과 광물을 모티프로 삼아 시간의 축적을 시각화한다. 반짝이는 표면 뒤에 감춰진 긴 생성의 시간을 드러내며 광물을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 아닌 시간의 압력과 응축이 빚어낸 존재로서 '견딘 시간의 결정체'로 바라본다. 
 
이어지는 기하학적 추상 회화는 도시의 빛을 주제로 한다. Golden hour, Misty hour, Glare hour, Blue hour 등 특정 시간대의 빛을 포착한 이 작업들은 10분 남짓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화면 위에 고정한다. 이로써 작가는 "사라지는 빛의 찰나를 그림으로 붙잡아 견고한 형태로 남기고자 했다”고 설명한다.세 번째 흐름은 매체 실험으로 확장된다. 크리스탈 레진으로 제작된 ‘가짜 광물’ 오브제와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조명 작업은 빛과 물질, 그리고 인식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탐구한다. 특히 관객의 동선에 따라 변화하는 일부 작품들은 시간의 경험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만든다. 
 
허윤민의 작업은 회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적극적으로 실험하며 경계를 고정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과 결합한 미디어 작업까지 이어가며 현실 공간 속에서 작품이 움직이고 반응하는 새로운 방식의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작가는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대학원 조형학과 신조형전공을 졸업하고 학문적 기반 위에서 실험적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다. 서울여자대학교, 춘천교육대학교, 한국성서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Cogito Artist Group, 양평청년작가회 대표를 이끌며 동시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회화와 오브제를 관통하며 개인전 5회, 60여 회에 참여했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특별한 감상법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작품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마음에 드는 한 작품을 편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보다 자유로운 감상의 방식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