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때 일은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우리 학교 가을 운동회는 꼭 추석을 며칠 앞두고 치러지곤 하였다. 학교 등교만 하면 운동회 연습으로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내리쬐는 따가운 햇빛에 온 몸이 구리 빛으로 그을리곤 했었다. 이때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줄다리기 연습, 달리기 연습 등에 몰두하느라 늘 공부는 뒷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에서 필자가 가장 자신 없는 경기는 달리기였다. 운동장을 한 바퀴 뛸 때마다 한 조가 10 명일 경우 늘 필자는 꼴찌였다. 하지만 짝꿍인 명선이는 달리기에선 꼭 1등을 거머쥐곤 했었다. 그런 명선이가 어린 마음에도 무척 부러웠다. 공부는 반에서 필자가 1등이었다. 하지만 달리기만큼은 늘 꼴찌여서이다. 이 점이 못내 속이 상했다. 달리기 연습을 할 때마다 꼴찌를 하노라니 친구들 보기에도 왠지 창피했다. 그래서 운동회 땐 꼭 1등을 하고 싶었다. 이런 각오 때문에 학교만 끝나면 운동장에 혼자 남아서 달리기 연습을 하곤 했었다. 드디어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운동회 날이 돌아왔다. 학교 운동장 하늘 가득 만국기가 펄럭이고 교문 앞엔 솜사탕 장수, 뽑기 장수, 풍선 장수 들이 하나 둘,모여 들었다. 이 날만큼은 마을 전체 잔치라도 벌인 듯 학부모님들이 음식 보따리를 잔뜩 싸들고 교문을 들어서는 날이기도 했다. 그 시절만 하여도 학교엔 학년 별로 한 반에 보통 학생들이 50, 60명이나 되었다. 그러니 전교생 수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운동회 날이 돌아오면 학교 운동장에 모여든 수많은 학부모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운동회 날 운동장 교단 위에서 교장선생님의 긴 말씀이 비로소 끝났다. 그러자 각 학년 별로 운동회가 시작됐다. 드디어 필자 차례가 돌아 왔다. 운동장을 한 바퀴 달리는 경기에 반 전체가 참여했다. 10 명씩 한 조가 되어 뛸 준비를 할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우리 집 온 가족은 물론 ,수많은 학부모들이 지켜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또 꼴찌를 하면 어떡하지?’라는 우려에 더욱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래서인지 운동장에 그어진 흰 선에 발을 내딛고 뛸 자세를 취하는 그 순간이 무척 길게만 느껴졌다. 곧이어 출발을 알리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젖 먹던 힘을 다하여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장을 반 바퀴 돌 무렵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총 10 명 중 3명을 젖히고 필자가 7등으로 뛰고 있었다. 꼴찌는 아니어서 한 시름 놓을 때였다. 갑자기 무엇인가 발에 걸려서 앞으로 고꾸라질 뻔 했다. 그리곤 아랫도리가 허전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운동복 반바지가 고무줄이 끊어져 흘러내려서 다리에 걸린 것이었다. 하는 수없이 뛰는 속도를 줄이면서 바지를 벗었다. 그리곤 벗은 바지를 냅다 운동장 한 가운데에 내동댕이친 채 속옷만 입고 뛰었다. 이 모습을 본 학부모 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덕분에 이 날 10 명 중 5등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리 기를 쓰고 꼴찌를 면하려고 애썼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바지를 벗은 채 속옷 바람으로 뛰었잖은가. 이는 아마도 꼴찌를 면하려는 강한 의지에서 나온 행동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한번 마음먹은 일은 꼭 성취하려는 성향은 어렸을 때부터 싹튼 듯하다. ‘어쩌면 이런 성향이 지난날 아이들 셋 키우며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의지의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라고 새삼 자화자찬(自畵自讚) 해본다. 그러고 보니 이젠 예전처럼 고무줄을 넣은 옷을 찾아볼래야 볼 수조차 없다. 그래서인지 어린 날 고무줄놀이 할 때 사용하던 검은색 고무줄을 동네 마트나 잡화 등속을 파는 가게에서도 구입할 수 없다. 필자 어린 시절만 하여도 가게 앞에 노란색, 검은색 고무줄을 줄줄이 걸어놓고 팔곤 했었다. 이젠 이 광경마저 사라졌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우리 곁에서 볼 수 없는 게 어찌 고무줄뿐이랴. 놀이터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지다보니 고무줄 놀이 하는 모습도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다. 이젠 지난날 해마다 가을철이면 연례행사처럼 열리던 학교 운동회도 자취를 감췄다. 편리와 신속만 추구하는 삭막한 현대에 사는 어린이들이다. 이런 기계화된 세태 속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훗날 어떤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에 간직할 수 있을까. 어린이들이 하늘의 마음인 동심(童心)을 점차 잃을 듯하여 이 점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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