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을 하나의 거대한 은행이라고 한다면 뱃살이나 허벅지 지방은 보통 필요할 때 수시로 꺼내 쓰는 보통 예금과 같습니다. 하지만 뼈 속에 숨겨진 골수 지방은 웬만해서는 깨지 않는 고정 금리 적금 같은 존재입니다. 단식을 하거나 격하게 운동을 해도 이 지방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뼈의 구조를 유지하고 비상시를 대비합니다.    그런데 암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극심한 체중 감소인 악액질 상태가 되면 도저히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이 최후의 금고마저 텅 비어버립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금고를 지켜낼 수 있을지가 최근 의학계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지금까지는 뇌가 교감 신경이라는 전용선을 통해 지방 세포에 분해 명령을 내린다고 믿어왔습니다. 뇌가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물질을 보내면 지방이 녹는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연구는 이 상식을 완전히 뒤엎었습니다.    신경을 인위적으로 끊어버리거나 신경 전달 물질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뇌에 특정 신호를 주자 뼈 속 지방이 똑같이 녹아내렸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신경망이 아니라 혈액을 타고 흐르는 인자였습니다. 특히 혈당과 인슐린 수치가 동시에 바닥을 치는 특수한 상황이 지방 세포의 견고한 빗장을 푸는 마스터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비결은 지방 세포 내부에 숨어 있는 브레이크 단백질인 G0S2에 있습니다. 보통 골수 지방은 일반 지방보다 이 브레이크를 수십 배나 더 많이 가지고 있어서 쉽게 분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혈당과 저인슐린이 동시에 닥치면 이 브레이크가 급격히 사라지면서 지방을 자르는 효소인 ATGL이 제멋대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저장은 멈추고 지출만 무한대로 늘어나는 파산 상태가 되는 셈입니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골수가 젤리처럼 변하면서 뼈가 약해지고 심각한 빈혈까지 찾아오게 됩니다. 결국 암 환자의 기력을 앗아가는 악액질의 핵심은 우리 몸이 스스로 브레이크를 해제해버리는 대사 상태에 있었습니다.그렇다면 악액질을 예방하고 소중한 에너지원을 지킬 방법은 없을까요?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바로 혈당을 세밀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수면 중에 혈당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 골수 지방의 분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최근 많이 사용하는 연속 혈당 측정기를 활용해 야간 저혈당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칼로리를 많이 섭취하는 것보다 혈당의 급격한 변동을 막고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 정교한 영양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의 마지막 자원인 골수 지방을 지키는 것이 암이라는 긴 싸움을 견뎌낼 체력을 지키는 길입니다.오늘 들으실 곡은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이 작품은 1853년 가을, 슈만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완성한 곡입니다. 9월 21일에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적었고,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협주곡을 완성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며칠 뒤에는 관현악까지 모두 끝냈습니다. 이 시기는 슈만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안정되고 행복했던 때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곡은 완성된 직후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 협주곡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아힘을 염두에 두고 쓰였습니다. 슈만은 직접 요아힘에게 악보를 보내 연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 요아힘은 이 곡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클라라 슈만은 마지막 악장을 고쳐달라고 요청했지만, 그 일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858년 비공개 연주가 있었으나 만족스럽지 못했고, 브람스는 슈만 전집에서 이 곡을 제외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출판도 연주도 하지 말자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원고는 도서관에 보관되었고, 슈만 사후 100년이 지나서야 연주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1937년 악보가 다시 발견되며 출판과 초연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에도 평가는 엇갈렸고, 지금도 슈만의 다른 협주곡들에 비해 낮게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곡에는 슈만 특유의 세계가 분명히 담겨 있습니다.1악장은 고전적인 협주곡에서 볼 수 있는 이중 제시부 형식을 따르지만,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처음부터 부드럽게 다른 조로 이동하며 긴장보다는 흐름을 중시합니다. 독주 바이올린은 화려한 등장 없이 바로 주제를 연주합니다. 발전부에서도 주제를 치열하게 해체하기보다는, 같은 생각을 반복하며 조금씩 다른 얼굴로 바꾸어 갑니다. 이 점이 요아힘에게는 단조롭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악장은 짧지만 매우 인상적입니다. 온화하고 노래하듯 흐르는 선율이 마음을 붙잡습니다. 훗날 브람스가 이 주제로 변주곡을 쓸 만큼 깊은 울림을 가진 멜로디입니다. 중간에 같은 선율이 단조로, 낮은 음역에서 다시 나타나며 묘한 쓸쓸함을 남깁니다. 병상에서 슈만이 들었다고 믿었던 선율과 닮아 있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마지막 악장은 폴로네이즈 리듬으로 시작하며 생기를 되찾습니다.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앞의 악장들을 지나 밝은 D장조로 끝을 맺습니다. 중간에는 2악장의 리듬을 떠올리게 하는 반주가 등장해, 작품 전체를 하나로 묶어줍니다.    이 곡은 한 번에 마음을 사로잡는 협주곡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슈만이 마지막으로 남긴 진솔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다 듣고 나면, 왜 이 음악이 이렇게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는지 조금은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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