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평생 교육 시대이다. 요즘은 필자 또래인 여성들도 자아실현을 위하여 복지관으로 혹은, 도서관 등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자아실현에 심혈을 기울이곤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게을러서일 것이다. 나이들 수록 공부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심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이것을 잘 알면서도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날만 새면 가사 노동에 얽매여서 집안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궁색한 변명이려나. 요즘은 젊은 날과 달리 시간도 빨리 흘러간다. 아침에 잠자리에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어느 사이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간다. 딱히 살림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한 가지 일에 매달리면 젊은 시절과 달리 능률도 안 오르고 시간도 꽤나 오래 걸린다. 집안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의 경우 깨를 볶는 일이다. 참깨를 조리로 일어서 물기를 뺀 후 넓은 후라이 팬에 볶아야 하는데 이 때 마다 문제가 발생한다. 깨를 태우는 일이 그것이다. 나무 주걱으로 깨를 쉬임 없이 휘저으며 볶아야 노릇노릇하고 고소한 깨소금이 된다. 그러나 자칫 한 눈을 팔거나 방심하면 금세 깨가 새카맣게 타버린다. 젊었을 땐 깨도 태우지 않고 적당히 잘 볶아서 시어머니께 칭찬도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걸핏하면 참깨를 태워서 깨소금 맛이 씁쓸하다. 그래도 아까운 마음에 버리지 못한 채 양념으로 사용한다. 이런 깨소금을 넣고 나물류나 채소를 버무리면 음식도 제 맛이 안 난다. 이렇듯 깨를 태우는 일은 정성이 부족해서이다. 무엇이든 마음을 다하여 행해야 하는데 서두르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깨 볶는 그 시간조차도 참지 못하고 급한 마음에 센 불에 볶아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인생사도 이와 매한가지란 생각이다. 아무리 바빠도 실 바늘허리에 매어서 못 쓰잖은가. 돌이켜보니 지난 시간, 여유 없이 늘 쫓기듯 살아온 삶이었다. 아이들 어렸을 땐 교육 사업과 가사 노동을 병행 하느라 항상 동동거렸다. 이즈음도 이러한 행동을 재현하는 데는 이 때 시간에 쫓겨서 몸에 밴 습관 탓인 듯하다. 어디 이뿐인가. 이즈막도 무엇이든 신속하고 편리한 일만 추구한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무슨 일이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매사를 단번에 결판내려는 조급증에 시달리기 예사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사가 어디 뜻대로 되는가. 걱정하고 안달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그야말로 될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성사가 된다. 그리고 되지 않는 일엔 꼭 원인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특히 노력도 안하고 무엇이든 거저 손아귀에 쥐려는 일이야말로 거지 본성이라면 지나치려나. 즉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인간관계도 그러하다. 사람과 사람 간의 정은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꽃과 동물을 보살피듯 사람 사이도 가꿔야 한다. 어느 한쪽만 상대방을 위하여 혼자 마음을 쏟게 된다면 머잖아 힘겨워서 그 관계는 와해되고 만다.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혼자서 아무리 상대방을 그리워하고 연모하는 마음이 커도 어떠한 반응을 일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의 감정은 지치기 마련이다. 또한 세상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너+나= 그래서 우리가 되잖은가. 마치 아주 작은 참깨 한 톨 한 톨이 모여서 그것이 고소한 깨소금이 되고 참기름이 되듯이, 우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가족이 된다. 그리고 그 가족 구성원이 마을을 이루어 사회와 국가가 탄생 됐잖은가. 뒤늦게 철이 드나 보다. 소소한 일인 참깨를 볶으면서 이렇듯 세상사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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