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두르지 않아야 하고, 누군가는 묵묵히 지켜줘야 합니다."4월의 공기가 아직 차가운 이른 아침,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 올라가자 햇살이 나뭇숲 사이로 번졌다. 전날 내린비로 물오른 연초록 나뭇잎이 더욱 싱그럽다.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25년을 한결같이 산과 나무 곁을 지켜온 여성 독림가 여경화(67)씨이다. 작업복에 묻은 흙, 거침없이 연장을 다루는 손놀림 등 묵묵히 숲의 상태를 살피고 다듬고 있다.'독림가(篤林家)'를 아시나요. 사전적인 뜻은 '산림을 착실히 경영하는 사람'이라고 표현된다. 이제는 거의 잊혀질 듯한 직업인 독림가.경주에서는 단 4명만이 독림가의 명맥을 잇고 있으며, 여 씨는 이 가운데 한명, 여성독림가이다."나무는 심으면 최소 10년은 지나야 그늘이 생깁니다. 성과가 빨리 보이지 않으니 젊은 세대가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거죠."실제 독림가는 점점 사라지는 직업이다. 개인이 수십년에 걸쳐 묘목을 심고 숲을 조성하는 ‘독림가 제도'는 1970~80년대 산림녹화의 핵심 동력이었으나, 요즘은 시간과 비용, 인력 부담으로 도전하는 이들이 크게 줄었다.여 씨도 이점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밀원이 좋고, 나무에서 풍기는 향기가 좋아 이일을 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여 씨가 숲과 인연을 맺은건 40대의 다소 늦은 나이에 농민사관학교 교육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무작정 나무를 키워 보자고 마음 먹고 3만5천여평으로 시작한 일이 현재는 8만여평으로 늘어났다.여 씨의 숲에는 편백나무와 엄나무, 헛개 고로쇠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여 씨의 하루는 단조롭지만 긴 호흡을 요구한다. 묘목심기, 가지치기, 병해충 점검, 사면 정비, 간벌 계획 확인 등 해야 할 일은 계절마다 다르다.혼자서 감당하기엔 벅찰 때도 많다. 특히 여름철 관리는 더 힘들다. 병충해가 퍼지는 건 순식간이고, 가뭄이라도 들면 몇 해 키운 묘목이 한 번에 타버리기도 한다.여 씨는 "독림가에게는 조림 및 숲 가꾸기 보조금, 산림경영계획 작성 지원, 산림소득 제품에 대한 국비 지원 등 제도적 틀이 마련돼 있지만 절차가 복잡다"며 "장비와 교육 지원이 좀 더 현실적으로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청년 산림경영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산촌 일자리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여 씨도 이런 흐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숲은 산업이면서도 공공재예요. 누군가는 묵묵히 지켜줘야 하는데, 지역 청년들이 조금씩 관심을 갖는 건 정말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여 씨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숲체험장을 만들어 여러사람이 숲의 경이로움을 느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