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평(平) 남짓한 사무실에서 늘 함께하는 것 중에서 동물은 나 혼자이고 나머지 모두는 식물들뿐이다. 더구나 하나뿐인 유일한 동물은 시도 때도 없이 사무실 밖 어디론가 나갔다 들어오곤 한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다른 식물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곤 한다. 넓디넓은 자연에서 자라야 할 그들을 좁디좁은 곳에 가두었음에도 나를 원망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한 것이라곤 풍경 좋은 창가에 자리 잡아 환하게 비치는 햇빛을 보게 한 것, 그리고 가끔 물을 준 것밖에 없다. 그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하게 고마운지 오히려 나를 항상 반긴다. 내 원죄를 알고 있음에, 나는 그들에게 항상 정성을 쏟으며 잘 자라기를 바란다. 한 달 전, 봄이 찾아올 무렵 그들에게 물 주는 주기(週期)를 바꾸었다. 다른 사무실의 식물보다 더 빨리 성장하여 곧 사무실 천장을 뚫을 듯하여. 사무실에서 가장 키가 큰 식물은 붉은물푸레나무인데, 주 2회씩 물을 주던 방식에서 1주, 2주로 점차 늘렸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니, 지난 주말 새싹을 트며 나온 제일 연약한 가지의 잎사귀가 말라비틀어져 보이는 것이 아닌가. 반면에 벵갈고무나무와 같은 다른 나무들은 이전처럼 잘 자라고 있다. 나무 의사에게 물어보니 수분이 부족해서 생긴 현상이란다. 나와 함께 오랫동안 공존하기 위해 주기를 늦추었는데, 오히려 부작용만 생겨버린 것이다. 이 식물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붉은물푸레나무는 물을 주는 적정 주기가 2주라고 되어 있는데, 왜 그런 걸까.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약한 고리가 무너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위기관리 개념은 비교적 단순하다. 위기가 닥치기 전, 평상시에 약한 고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때 단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같이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 이는 기본적인 대비책에 지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많은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대개는 ‘무엇’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어떻게’를 잘 알고 있다. 하고 있는 일 중에서 평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만일 발생한다면 매우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요리조리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조직에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여러 가지 조건으로 상정해서 이를 바탕으로 ‘위기관리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에 대한 답이다. 그런 후, 이를 반복적으로 훈련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위기를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다. 위기 자체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프탈리 베네트(Naftali Bennett)는 이를 “위기는 기존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변혁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위기관리에는 사전 대응도 중요하지만 위협이 발생하는 도중, 그리고 위협 발생 이후의 대처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위기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위기 대응 방식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이 지금도 통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이라는 조건을 항상 생각하며, 바뀐 환경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조직의 규모와 형태, 위기의 종류 등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직, 다른 위기 대응에서 성공했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한수원의 시설이면서 동시에 국가중요시설인 원전의 보안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시큐텍(주)은 여러 가지 위협 요인들을 상정하여 이를 각각 위기관리 시나리오로 만들어 반복적으로 훈련하고 있다. 하지만 위협의 종류는 나날이 진화하며 달라지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비책을 적기에 마련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훈련하여 체화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위기에 처한 벵갈고무나무와 붉은물뿌리나무는 각각 다르게 대응하듯이, 우리 회사는 원자력발전소와 양수발전소, 그리고 수력발전소 등 발전소 유형별, 발전 용량별 등과 같은 여러 특성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가 절체절명의 위기일지라도, 그리하여 ‘포스 마쥬어’(Force Majeure) 상태일지라도 우리의 위기 대응 능력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자연에서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한 종(種)을 우리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 현존하는 종’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이들은 진화의 페이지에 이름을 올렸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한 자연과 함께 계속할 것이다. 흐드러진 이 봄날, 벚꽃이 시드는 것은 그때가 다해 사그라질 뿐이다. 그러나 멀쩡한 나뭇가지의 새싹이 시드는 것은 그때가 다해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단지 ‘시든다=사라진다’라는 등식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그리하여 미처 위기의 징후마저도 알아채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이게 아닌가벼!”, 혹은 “여 아니네” 할 때는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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