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 율곡면 갑산리 산29번지에 가면 고려 성종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후일 문하시중에 오른 초계변씨의 시조 변정실의 묘가 있다. 문중 기록에 따르면 변씨의 선대는 중국 당나라 사람 변원(卞源)으로 그는 서기 743년(신라 경덕왕 2년)에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와 정착했다. 
 
그러나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상계를 고증할 문헌이 없어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훗날 문하시중에 오르고 팔계군에 봉해진 문열공 변정실을 시조로 받들었다. 팔계(八溪)는 초계의 옛 이름이라 초계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우리나라 초계변씨 8만여 명의 시조로 이 묘소에 매년 음력 10월 1일 후손들이 모여 세일제를 지낸다. 
 
시조 묘는 17세손 기달(1647~1706)의 배우자 진양강씨(1652~1697)가 호수 바닥에 묘비가 있음을 문중에 알렸고, 이후 문중에서는 묘소를 찾아 봉축하였다고 전한다. 판석에는 다라니경으로 추정되는 범어가 보이며 묘비는 1778년 후손 20세 광보(光寶) 등이 세웠고, 1973년 문학박사 이가원(李家原)이 찬문(撰文)하고 26세손 정석(鋌奭, 1929~?)이 썼다. 
 
묘소 전면 석축에 새겨져 있는 범어 다리니 석각(夕刻)은 무덤 안에서 출토된 4점 중 하나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관(石棺) 구성의 부재(副材)로 보이며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시조의 4세손인 변고적이 밀양에 살면서 그 후손 일부는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으며 2,000년 현재 밀양변씨는 16,911명으로 초계변씨 49,506명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이곳의 산세는 백두대간 남덕유산(1,507m)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나온 지맥이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1,120m)에 이르고, 여기서 동쪽 다시 동북쪽으로 방향을 틀며 올라가 대암산(591.1m)을 지나 이 묘소의 주산인 용덕산(230.5m)을 일으킨다. 초계변씨 시조의 묘소는 용덕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하나의 가지를 뻗어 내려오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혈장에는 경사도가 제법 있어 2중, 3중으로 축대를 쌓아 당판을 만들었다. 풍수에서는 혈은 용진처에서만 맺는다 하였기에 이러한 곳은 지기가 머무르지를 않고 그냥 흘러내리는 곳으로, 본인의 식견으로는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곳의 수세는 좌선룡에 우선수로 합법하고 약간의 거리감은 있으나 주변의 황강이 3면을 감싸고 흘러 안쪽의 생기를 잘 갈무리해주고 있다. 
 
풍수에서는 청룡·백호와 안산 넘어 에서 흐르는 물을 암공수(暗拱水)라 하고 그 안쪽을 생기 가득한 대 길지로 평가한다. 『인자수지』에서도 “명조불여암공(明朝不如暗拱)”이라 하여 보이는(明朝) 물길이 암공(暗拱)만 못하다고 하였다. 
 
여기에 주변의 사신사 중 백호의 끝자락이 혈장 앞까지 뻗어 나와 아름다운 금형체의 안산을 만들어 주니 혈장에 좋은 기운을 보내준다. 그러나 이곳의 혈장은 주변 수세와 산세가 아무리 좋아도 혈장에 혈증도 보이지 않고 당판의 경사도를 보아 명당 길지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풍수에서는 주변 산세와 수세가 아무리 좋아도 시신이 묻힐 혈장이 확실치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것은 내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이 아무리 부유하고 성격이 좋아도 내가 건강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이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