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겪은 일은 오랜 시일 가슴 깊이 각인돼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 똬리를 틀곤 한다. 당시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잠시 시골 살 때 일이다. 그곳은 마을 전체 주민들이 산에서 땔감을 해왔다. 이 때 동네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나무를 해치는 바람에 근처 야산은 헐벗다시피 했었다. 이를 제지하느라 산 곳곳엔 팔에 노란 완장을 두른 산지기가 눈을 부릅뜨고 민둥산을 지켰다.   우리 집은 아버지의 심한 바람기에 의한 부재(不在)로 어머니가 집안일을 도맡았다. 심지어 어머닌 먼 산까지 가서 땔감을 준비해야 했다. 초등학교 2학 년 겨울 어느 날로 기억한다. 어머닌 갈퀴, 지게, 낫을 챙겨서 필자와 남동생을 앞세우고 눈 덮인 마을 뒷산을 올랐다. 막상 가보니 눈으로 뒤덮인 산 속엔 땔감 거리가 별로 없었다. 갈퀴로 긁던 마른 솔잎조차도 눈에 젖어서 쓸모가 없었다. 어머닌 드문드문 나무에 매달린 마른 나뭇가지를 낫으로 쳐 내렸다. 이 때 5살이던 남동생과 필자는 그 나뭇가지를 언 손을 호호 불며 주워서 날랐다.   동생과 필자가 부지런히 몸을 놀릴 때였다. 어디서 왔는지 우락부락하게 생긴 팔에 완장을 두른 남자가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누구세요?” 라며 그를 올려다보며 묻는 동생의 뺨을 느닷없이 내리쳤다. 그러자 그 힘에 동생은 볼을 감싼 채 앞으로 나동그라지며 산비탈을 굴렀다.   이도 모자라서, “ 함부로 나무를 꺾다니. 뜨거운 맛을 못 봤구먼.” 라고 하며 산이 쩡쩡 울리도록 큰 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곤 이번엔 어머니 손에 들린 낫을 빼앗았다. 그이로부터 뺨을 맞은 동생은 저만치 산 아래로 굴러서 눈구덩이에 엎어져 울고 있었다. 동생의 이 모습을 보자 격분한 필자는 상대가 어른이지만 겁 없이 대들고 말았다.   “ 아저씨! 그렇다고 동생을 때립니까? 우리가 생나무를 벤 것도 아니고 죽은 나뭇가지를 친 것 뿐인데 왜? 제 동생을 때려요?” 라고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 그러자 그는 솥뚜껑 같은 손바닥을 번쩍 들어서 나를 때리려고 했다. 순간 어머니가 필자를 향한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러자 그는 어머니 손을 힘껏 뿌리치려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가까스로 자리에서 눈을 털고 일어난 그는 땅에 침을, ‘퉤!’ 뱉고는 얼굴이 벌거니 산 아래로 황급히 내려갔다. 그 이후 동생은 그가 따귀를 때릴 때 고막이 터져서 병원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해마다 겨울철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저 멀리 보이는 흰 눈 덮인 산을 바라볼 때마다 지난 일이 엊그제처럼 눈앞에 선명히 떠오른다. 작달막한 키에 험상궂었던 그 산지기의 얼굴이 그 때는 참으로 무서웠다.   동생도 5살 때 일이지만 요즘도 그 일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산지기에게 이런 봉변을 당하자 얼른 빨리 어른이 돼서 어머니를 호강 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 결심은 훗날 어머니를 수 십 년간 봉양 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 그 산지기가 동생에게 행한 손찌검은 숱한 시간이 흘렀어도 결코 가슴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산에서 동생이 생면부지 남자로부터 뺨을 맞은 것은 필자가 그를 제압할 만한 힘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자신을 탓하기도 했었다. 그 생각은 한 권의 책을 읽기 전까지 긴 세월 동안 마음속에 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심리학자인 배르벨 바르데츠키가 펴내고 두행숙이 번역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라는 책이 그것이다. 그의 해적이에 적힌 문구가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해법으로써 상처를 받았을 때 유일한 일은 이를 이겨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의 모든 상처를 자신과 관련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잘못’ ,‘너의 잘못’을 따로 분리하라고 한다. 이는 아마도 무조건 내 탓, 남의 탓으로 만 돌리지 않을 때 상처로부터 쉽사리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때 산지기의 행위는 매우 그릇됐고 또한 비정했다. 그러나 남의 산에 나무를 하러간 우리도 원인 제공을 한 것이다.   상처는 화살을 맞을 때처럼 마음의 고통이 크다. 그러나 어느 사안을 외면 한 채 타인 탓만 한다거나, 자책을 일삼는다면 상처의 아픔은 더욱 깊어질 듯하다. 이는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이젠 상처가 안겨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에 더 주력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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