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개혁이 밀도 있게 추진되는 가운데 '사법 체계 업그레이드'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목격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최근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수사를 받다 출국 금지된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미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서한을 경찰청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7월 4일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에 방 의장이 참석할 수 있도록 출국 금지 조치를 일시 해제해 달라는 취지로 읽힌다. 미 대사관이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요청한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사법체계를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방 의장은 2019년 하이브 상장 이전 "상장 계획이 없다"고 속여 사모펀드에 주식을 팔게 한 뒤 상장을 했으며, 해당 사모펀드와 사전 계약에 따라 상장 후 매각 차익의 30%를 받아 1900억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의 규모나 사회적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요청은 방 의장에 대한 사법 처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칫하면 한국의 사법 주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다.지난해 말 불거진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수사도 미국과 연계되면서 길을 잃었다. 경찰은 지난 2월 초까지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대표를 두 차례 부르는 등 적극적인 수사를 벌였다. 수사에 가속이 붙을 즈음 미국 의회가 로저스 임시 대표를 불러 비공개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이달 초 쿠팡 본사에 대해 추가 압수수색을 벌이긴 했지만, 평균 사건처리 기간을 훌쩍 넘기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검찰이 '해체 위기'를 맞을 정도로 사법 개혁이 서슬 퍼런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관련된 사안에는 한국 사법이 작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법이 대외 변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는 있다. 한미동맹이라는 특수한 관계, 글로벌 기업의 영향력,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행정부의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대외 변수에도 사법이 공정하게 행사돼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외교적 요청도 사법 절차 안에서만 검토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세워나가야 한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