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돌은 오랜 세월 불상과 탑, 석등과 유적으로 시간을 견뎌왔다. 그 경주 화강석이 오늘날 가족의 웃음과 온기를 품은 호랑이로 다시 태어났다.    40여 년간 돌조각 한 길을 걸어온 조각가 오채현이 경주에서 체득한 돌의 감각과 전통 미감을 바탕으로 서울 삼청동에서 개인전 ‘돌 호랭이 납신다(The Happy Tiger Descends)’를 열고 있다.오는 5월 16일까지 갤러리 진선에서 진행되며 신작 조각 14점과 드로잉을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이어온 대표 연작 ‘해피 타이거(Happy Tiger)’ 시리즈의 확장판으로 한국적 해학과 현대적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자리다. 작가 오채현은 화려한 신소재나 빠른 제작 방식을 좇기보다는 작품의 근간으로서, 오랜 세월 경주 화강석만을 우직하게 고집해왔다. 경주에서 성장한 그는 누구보다 이 돌의 성질과 결을 잘 알고 있다. 은근하고 부드러운 색감, 따뜻한 표면감은 작가가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형상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재료였다.경주는 오채현에게 단순한 고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신라 천년의 문화유산이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 그는 수많은 석조 유물과 장인의 손길을 보며 성장했다. 첨성대와 석불, 석탑이 일상처럼 존재하는 도시의 풍경은 자연스럽게 전통 조각의 심미안을 몸에 익히게 했고 훗날 그의 조형 세계를 떠받치는 밑거름이 됐다. 경주의 돌 문화가 오늘의 오채현을 만든 셈이다.현대 조각계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감각적 소재, 효율적인 제작 시스템으로 빠르게 변모하는 흐름 속에서도 그의 작업 방식은 묵직할 만큼 고전적이다. 작가는 오랜 세월, 반복과 인내의 시간을 견디며 차가운 화강석을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형상으로 구현했다. 오 작가의 호랑이는 무섭지 않다. 위엄과 공포의 상징으로 군림하던 맹수가 아니라 민화 속 익살스러운 얼굴을 하고 정면을 바라보며 웃는 존재다. 서로 몸을 기대고, 장난을 치고, 때로는 가족처럼 기대어 선다. 한국 미술 속 호랑이의 또 다른 얼굴, 곧 친근함과 해학을 현대 조각으로 옮겨내고 있다.대표작 ‘해피 패밀리(Happy Family)’는 이번 전시의 중심축을 이룬다. 두세 마리 호랑이가 서로 몸을 맞댄 채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머리나 꼬리 위에는 작은 새가 앉아 있다. 새는 가족 간의 소통과 교감을 상징한다. 함께 살지 않아도 이어지는 마음의 거리, 작가는 이를 돌 위에 담담히 새겨 넣었다.오채현의 조각에는 외로움보다 행복이, 좌절보다 희망이, 상처보다 기쁨이 담겨 있다. 투박하지만 넉넉한 웃음, 털털한 표정, 인간적인 체온이 작품 곳곳에서 전해진다. 힘겨운 노동의 축적 끝에 얻어진 따뜻함이라는 점에서 그의 조형 세계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으로 읽힌다.   오 작가는 "한국 문화에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요즘, 이번 전시로 전통적 소재와 우리 민족의 해학적 요소를 이해하며, 시대가 달라져도 변치 않는 가치인 정겨운 가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오채현 조각가는 경북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이후 국내외에서 40여 회의 개인전과 다양한 아트페어를 통해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동양의 정서와 서양의 조형 감각, 전통과 현대의 미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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