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도 냄새도 무게도 없는 게 바람이다.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은 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집 앞 전선에 앉아서 괴이한 울음소리로 울부짖기도 한다. 이 소리에 단잠을 깨곤 했었다. 하긴 바람이 켜는 현(絃) 소리에 밤잠을 설친 적이 어디 봄 밤 뿐이던가. 이 때 바람의 힘은 매우 강하여 계절에 상관없이 불어 닥쳐 밤새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창문까지 흔들곤 한다. 또한 온갖 꽃향기를 훈풍에 실려서 우리네 가슴까지 설레게 하는 게 봄바람이다. 이로보아 바람 중에 가장 감미롭고 달콤한 것은 봄바람이다. 그러나 이런 봄바람도 마냥 순하진 않다. 꽃샘추위를 몰고 오곤 하잖은가.   인생 행로에도 훈풍, 미풍, 태풍 심지어 토네이도와 같은 여러 종류의 바람이 불어오기 마련이다. 봄 날 벚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꽃잎을 떨구듯이…. 수 십 년, 수 백 년 제자릴 지키던 나무가 순식간에 가지가 부러지고 뿌리가 뽑히듯이, 우리 역시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 앞에 휘청이고, 넘어지기 예사이다.   평생을 일궈온 명예 및 재산을 한낱 일시에 불어온 어느 바람의 손아귀에 쥐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게 아니어도 한 때 불어 닥친 유행 바람은 우리를 현혹시키는 힘도 지녔다. 조기 유학 바람, 성형수술 바람이 그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몰입하는 주식 투자 바람은 그 위세가 매우 대단하다. 성형의 바람만 해도 이에 못지 않다. 이 바람은 아름다워지려는 여인의 욕망을 한껏 부채질 한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일명 ‘선풍기 아줌마’로 불리우던 어느 여인에게도 이 바람은 비껴가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 ‘외모지상 주의’라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렸잖은가. 그래서 지난날 멀쩡하고 예쁜 자신의 외모임에도 이에 불만족 했다. 심지어 이 욕구에 의하여 수없이 얼굴에 스스로 이물질인 식용유까지 주입 했잖은가.   이젠 이러한 아름다워지려는 여인들의 심리가 사진에도 유입 되고 있는듯하다. 카톡에 올라오는 프로필 사진에선 변신의 미(美)마저 느낀다. 인위적으로 포토샵 처리 된 얼굴이어서인가. 대면하면 카톡에 오른 사진과 실제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이는 대부분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촬영하면 이것에 내장된 수정 가능한 앱 덕분이다. 오죽하면 몇 년 전 어느 회사에선 이런 사진이 부착된 이력서를 배제하기도 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 있다. 신입 사원 이력서에 포토샵 처리한 사진을 붙여 제출하면 면접시험에서 낙방을 시켰다고 한다. 물론 아름다워지려는 여인의 본능적 욕심을 탓할 순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성형도 모자라 사진마저도 본래 모습과 다르게 고친다면 본연의 모습을 잃을듯 하다. 뿐만 아니라 왠지 눈속임을 당한 느낌이라면 구시대적 발상일까? 얼마 전 필자 카톡에 올린 사진이 겨울 옷인 패딩을 입은 모습이라서 보기에도 둔해 보였다. 그래서 계절에 맞게 가벼운 옷차림의 사진으로 바꿨다. 그러자 카톡에 친구로 있는 지인이 전화를 해 와, “ 사진에 손 좀 보았나요? 사진이 예쁘게 잘나왔어요.” 라고 한다. 이 말에, “ 있는 그대로 모습입니다. 다만 2년 전 사진일 뿐입니다.” 라고 답했다. 하긴 요즘 사진을 찍어보면 나이를 새삼 실감하곤 한다. 불과 1, 2년 전 사진 속 모습이련만 현재와는 어딘가 달라진 듯해서이다. 주로 사진은 막내딸이 찍어주곤 한다. 이때 딸아이에게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포토샵 앱을 사용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촬영을 부탁하기 예사이다. 그러면 딸은 눈가에 주름이랑, 굵은 팔뚝은 고쳐야 한다며 스마트폰 앱 사용을 권한다. 이럴 때마다 본판 사진을 고집하곤 한다. 이유는 무엇이든 본질을 선호해서이다. 인위적인 미는 본연의 모습을 희석 시키는 듯하여 왠지 내키지 않는다. 인간관계만 해도 그렇다. 상대방을 대했을 때 너무 많은 허울을 뒤집어 썼으면 선뜻 다가갈 수 없다. 가식적인게 불편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미를 느낄 수 없어서 두 번 다시 대하고 싶지 않다.   불완전한 게 인간이다. 다소 완벽하지 못해도, 설령 더러 실수를 저질러도 본심이 항심(恒心)인 사람이면 절로 정이 간다. 그러나 교만하거나 권위적인 사람에겐 경계심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이런 타인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각에도 언제 어느 때 새로운 바람이 불어와 그 바람에 휩쓸릴 지는 장담 못한다. 향후 오만과 젠체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어서이다. 또한 더 나이가 들어서 사진을 찍을 경우의 일이다. 그 땐 좀 더 타인에게 젊게 보이려는 마음에서 사진을 고치는 이 유행 바람에 동참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미래의 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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