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AI의 열풍이 불고 있다. 시도 때도 없다. 우리 회사 역시 그렇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깊이가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AI를 활용한다면서도 그 결과는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보이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누군가는 진수성찬을. 다른 누군가는 적당한 양의 음식을. 또 다른 누군가는 형편없는 식사를. 하지만 모두 그냥 밥 먹었다고 하는 것 같다.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는 처지에 있는 듯 AI를 받아들인다. 농업 혁명이 일어난 문명 초기의 인류도 더운밥, 찬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4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배고픔의 정도는 다를지언정 사라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 비해 엄청난 문명의 발전이 있었음에도 왜 우리의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배고픔, 즉 부족함에 대한 우리 인류의 생각은 궁극적으로 언제 끝날까. 아니 그 끝은 과연 있는 것일까. 물론 부족함은 새로운 창의적인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그것이 문명의 발전으로 연결되었다. 창의적인 생각은 곧 과학기술로 나타나며, 이 과학기술은 문자로 표현된다. 따라서 문자는 우리 문명의 발전을 이룩한 매개체다. 우리가 문자를 발명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문명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의 부족함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끝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부족함은 부족한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원하는 무언가를 얻으려 할 때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원하는 무언가를 얻으려면 에너지가 끊임없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문명의 발전은,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이었다. AI는 바로 이런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AI가 완벽하게 대신하는 것이다. 이런 AI의 상태를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AI 역시 우리 대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즉 현재로서는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물론 이 에너지는 지금의 전기 에너지가 아닌 다른 형태의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어떤 형태의 에너지이든지 반드시 에너지는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 이후의 우리 문명의 발전 과정은 효율적인 AI, 즉 에너지를 보다 더 적게 쓰는 AI, 그리고 에너지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카르다쇼프 척도’(Kardashev scale)는 문명이 사용하는 에너지에 따라 우리 인류의 문명 발전 단계를 나타낸다. 이에 따르면, 현재 우리의 문명 수준은 1단계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태양과 같은 항성이나 은하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높은 단계는 2, 3단계라 한다. 우리가 이런 단계의 에너지를 활용한다면 AI는 다른 어떤 에너지의 공급 없이 스스로 끊임없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태에 도달하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특이점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특이점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AI가 인간을 파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AI가 인간을 도와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첫 번째의 경우가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란과의 전쟁이다. AI를 전쟁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표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인 ‘팔란티어’와 ‘앤스로픽’이 이번 미국의 ‘장대한 분노 작전(Operation Epic Fury)’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팔란티어의 ‘고담’이 공격 목표를 식별하여 이란의 방공망 허점을 분석하는 데 쓰였다. 또한 앤트로픽의 ‘클로드’는 이를 바탕으로 수만 가지 공격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여 최적의 공격 방법을 제안했다. 두 번째의 경우가 AI가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경우이다. 샘 알트먼은 “AI 다음 물결은 노동의 비용을 제로로 만드는 로봇 혁명이다.”라고 말했다. 로봇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 또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경제포럼은 “로봇 자동화로 일부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지만, 동시에 직무의 성격이 변화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전망한다. 시큐텍(주) 또한 빠르게 변하는 AI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래전략팀을 만들었다. 한수원의 시설인 원자력발전소의 보안 경비를 어떻게 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시큐텍(주)은 AI의 미래를 두 번째 경우로 만들어가는 데 조그만 힘을 보태고 있는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AI의 미래가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카이스트 공경철 교수가 그의 책 『로봇의 미래』에서 말했듯, “로봇은 사람의 능력을 재창조하고 더 먼 곳으로 데려간다.”라는 말처럼. 이제 우리는 AI와 로봇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AI와 로봇이 단순히 우리 일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삶의 근원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과학기술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에 대해 100여 년 전,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당시에 놀라울 만큼 낙관적인 글을 썼다. 그는 책 『설득의 에세이(Essays in Persuasion)』에서 “기술 진보에 따라 ‘노동의 필요’를 급격히 감소시키고, 하루 3시간의 노동이 충분한 사회를 상정했다.” 이제 그의 예언이 AI와 로봇을 통해 현실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기술이 되돌려 준 남는 시간을 삶의 목적이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케인즈의 마지막 질문은 “풍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였다. 우리의 미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즉 ‘잘 사는 삶=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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