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때로 구조가 되고 때로는 생명이 된다. 단단히 짜인 틀 위, 유기적인 형상이 꿈틀대며 얹혀 있는 여러 도자들. 
 
경주지지호텔 로비에 놓인 기동규 작가(60)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형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게 한다. 
 
오랫만에 선보이는, 기동규 작가의 삶의 은유이자 동반자로서의 작품이 우리를 기다린다.경주지지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기동규 작가 특별전 – 삶을 담다(Embracing Life)’는 도예의 전통적 개념을 넘어선 조형 언어로 관람객과 마주한다. 오는 6월 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호텔 로비 전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문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구조적 프레임 위에 유기적 형상이 얹힌 조형물이다. 사각 구조는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위에 놓인 형상은 마치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흐른다. 물고기나 파충류를 떠올리게 하는 곡선, 껍질 같은 질감, 그리고 표면에 새겨진 섬세한 무늬들은 흙이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직선적인 프레임은 안정감을 주지만, 그 위에 얹힌 형태들은 균형을 거부하듯 비틀리고 흘러내린다. 표면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동시에 미세한 패턴과 유약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섬세함도 공존해 시각적 리듬을 형성한다.
이처럼 기동규 작가의 작업은 ‘구조와 생명성의 충돌’에서 출발한다. 도예의 기본인 번조와 유약, 질감 처리 과정을 철저히 연구해온 그는 흙의 물성이 지닌 가소성과 변형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낸다. 
 
특히 가마 속 소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는 그의 작품 세계의 핵심이다. 고온의 불길 속에서 형태는 뒤틀리고 찢기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욱 강렬한 생명력을 획득한다.이러한 조형 언어는 곧 삶에 대한 은유로 이어진다. 틀과 규범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흔들리는 인간의 존재. 기동규 작가는 35여 년간 흙을 다루며 이러한 삶의 흔적을 작품 속에 축적해왔다. 인내와 번뇌, 그리고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의 의지를 도자의 형태로 환원해낸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작업과 더불어 보다 구체적인 형상도 함께 선보인다. 동물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은 작품에 한층 친근한 온기를 더하며 작가의 시선이 점차 부드러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형식 변화가 아니라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이기도 하다.기동규 작가는 그동안 이탈리아 밀라노, 독일 쾰른, 홍콩 등 국제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실험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왔다. 특히 밀라노 ‘푸오리 살로네’에서는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동양 도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의 작품은 낯설지만 강렬하고, 파격적이면서도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꾸준히 주목받았다.전시를 주최한 경주지지호텔 이재성 총지배인은 “호텔을 단순한 숙박 공간을 넘어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열린 공간으로 확장하고자 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만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기동규 작가는 “불 속에서 이뤄지는 물성의 표현은 오랜 시간 탐구해온 나만의 작업 방식”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도예의 새롭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도예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으로도 보인다.이번 전시는 기동규 작가의 삶의 흔적을 마주하는 자리로 보인다.
청주대학교 공예학과를 졸업한 기동규 작가는 전국기능경기대회 동상, 포항국제아트페스티벌 대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정예작가 초대전과 한·일 도예대학 추천작가로 활동했으며 LA·쾰른·밀라노·홍콩 등 국내외 아트페어에 30여 회 참가했다. 
 
밀라노와 서울, 대구에서 개인전을 포함해 7회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단체전 출품만도 300회에 이른다. 경기국제도자비엔날레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도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경주시 하동공예촌에서 세인도예연구소를 운영하며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