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그림은 영원합니다. 그 영원성이 있기에 또한 책임도 져야 해요. 그리고 ‘내일 그린 그림이 제일 아름답다’는 말처럼, 오늘 그린 그림에 결코 안주하지 않습니다”   경주시 현곡면 한적한 산촌, 사계절의 빛이 머무는 정원 한가운데서 지난 4일 최영달 화백(75)을 만났다. 산으로 둘러싸여 어머니 품속 같은 지형의 작업장에서의 그의 시선은 나무와 풀, 꽃과 돌에서 별과 별 사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확장된다.   경주와 경기도 동탄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최영달 화백의 작업은 그렇게 정원에서 출발해 우주로 나아간다. 그 여정의 중심에는 늘 ‘마음의 풍경’, 곧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가 자리한다.   1951년 경주에서 태어난 최영달은 감포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바다와 바람, 자연 속에서 자란 기억은 그의 작업의 근원이 됐다. 이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고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며 표현의 폭을 넓혔다. 경주의 순박한 환경에서 자라온 그에게, 자유가 넘치는 대학 문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충격’이었다고 한다. 이후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는 곧, 작품 세계의 변화로 이어졌다.   최 화백은 37년간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후학 지도와 창작을 병행했고 대학에서는 표현기법과 색채학 등을 강의했다. 현실과 창작예술 사이를 오가며 쌓아온 시간은 그의 작업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197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외서 12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36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독일,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전시를 이어오며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확장해왔다. 또 신라미술대전과 겸재진경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지역과 한국 미술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어어왔다.   최 화백의 작업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었다. 초기에는 강한 추상 회화에 몰두했다. 물감을 여러 겹 쌓고 갈아내는 독특한 기법, 이른바 ‘바람’ 연작은 보이지 않는 기운과 흐름을 화면에 담으려는 시도였다. 이 실험적 작업은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주목을 받았다. 이어 추상에 머물던 화면에 달, 바다, 산과 같은 요소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단연 ‘정원’이다. 30여 년 전부터 가꿔온 정원에서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화폭에 옮긴다.   최 화백에게 정원은 ‘살아온 시간의 집합’이다. 봄의 아이리스와 라일락, 여름의 소나무와 연못, 가을의 단풍, 겨울의 눈 덮인 모과나무까지, 사계절의 변화는 곧 그의 삶의 리듬이다. 작품 속 정원 풍경은 단순히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길어 올린 감정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풍경을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 이미 마음속에서 사랑한 풍경을 다시 꺼내 그릴 뿐”이라며 그가 추구하는 회화를 설명했다. 그의 그림은 현실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연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 기억, 감각이 뒤섞여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최 화백의 풍경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미술평론가 김성호는 그의 작업을 “마인드스케이프로 견인하는 순수와 환상 자연”이라고 평한다. 즉 그의 회화는 눈으로 본 풍경이 아니라 마음으로 경험한 풍경이다. 외부의 자연이 내면을 통과하며 다시 구성된 심상적 풍경인 셈이다.  그의 시선은 정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알래스카의 빙벽, 미국 모뉴먼트 밸리의 일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의 석양, 백두산의 장엄한 풍경까지, 50여 회에 이르는 해외여행은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다. 이 과정에서 ‘밖의 자연’은 ‘안의 풍경’으로 변환된다. 그의 회화는 결국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최근 그의 작업은 또 한 번의 도약을 맞이했다. 정원과 자연을 넘어 우주로 확장된 것이다. 우연하게 한 호텔의 복도에서 빛이 만들어낸 장면이 천국으로 가는 문처럼 느껴졌던 순간, 그는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고 존재론적 질문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예술관은 분명하다. 반복 생산되는 ‘상품’으로서의 그림을 경계한다. 작품은 감동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 감동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의 회화 출발 역시 그러했다. 어린 시절 화집에서 본 고흐 작품에서의 강렬한 감동이 화가의 길을 결정지었던 것이다.   지금도 최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내일 그린 그림이 더 좋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는 예술을 완성이 아닌 과정으로 보는 태도가 담겨 있다. 교직에서 은퇴하고 70대 중반에 이른 지금, 최 화백은 오히려 “지금이 가장 자유로운 시기며 다음 작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현재 그는 대형 작업과 ‘천국의 문’ 연작에 몰두하며 새로운 전시를 준비중이다. 정원에서 시작된 그의 회화는 이제 우주로 확장됐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청년학도의 순수한 본질이 내재돼 있다. ‘자연을 통해 순수를 길어 올리고 그것을 환상으로 번안하는 화가’라는 평론가의 말처럼, 정원에서 출발한 그의 회화는 이제 별과 별 사이를 건너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화폭 위에 펼쳐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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