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지방자치단체 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역사마저 윤색 각색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야기를 곁들여 감성팔이를 하면서 없는 사실도 역사인 양 둔갑시키고 설령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비틀어 윤색시켜 전혀 다른 역사적인 사실로 둔갑시킨다.
엉터리로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역사를 모티브로 하는 스토리텔링 사업의 목적은 오직 관광객유치를 통한 지역경제활성화에 맞춰져 있다.
산청의 전(傳)구형왕릉은 빈약한 소재를 역사적인 사실로 윤색한 대표적인 사례다. 전해오는 이야기를 사서에 실려 있다는 이유로 복원 단장해 관심을 끌도록 한 것이다.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은 신라 법흥왕 532년 이사부의 공격으로 항복하고 신라에 귀속됐다.
김유신의 증조부다. 산청의 돌무덤을 두고 석탑이냐 무덤이냐의 논쟁은 오늘날의 얘기가 아니라 처음 왕릉이라 '카더라'라고 서술한 동국여지승람이 단초를 제공했다.
이후 증보문헌비고에서 민간전승이라며 신라왕릉이라고 서술하고 1798년에는 인근 왕산사라는 절의 사중기에 구형왕릉이 등장한다. 또 1864년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왕산사는 구형왕의 수정궁터이며 무덤은 구형왕릉이라고 했다.
모두가 구형왕 사후 1천여년이 지난 이야기들이다. 불탑이 왕릉으로 변해가고 가야 구형왕릉으로 변해 갔음을 알 수 있다. 조금만 살펴봐도 설득력이 없는 유적이다. 구형왕릉과 같은 돌탑은 의성과 안동 단양 충주 제천등지의 방단형적석탑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초기 돌을 쌓아 만든 불탑의 한 갈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만들어진 역사의 흔적은 인물 제도 유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분야에서 덧칠이 되어 전해지고 있다. 목적은 개작 윤색 덧칠을 해야 나에게 좋고 득이 된다는데 있다.
무주에 있는 나제통문이야기는 석굴을 경계로 신라와 백제의 군사가 대치했다는 것이지만 1990년에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이는 1963년에 무주 33경을 설정하면서 입혀진 명칭으로 1925년 일제가 인근에 용화금광을 개발하면서 석모산의 기미니굴을 높이 3미터 길이 10미터의 터널로 뚫었던 것이다.
창녕 우포늪 역시 거짓의 자연사를 무기로 내세운 사례다. 늪의 생성시기는 길어야 수천년에 불과한데도 1억4천만년의 신비를 간직한 우포늪이라고 과대 포장하고 있다.
지질학자들은 경상도의 형성을 1억년전으로 보고 있으며 세계 최고(最古)의 호수라 불리는 바이칼호수도 1억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우포늪이 1억4천만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면 기네스감이며 세계가 놀랄 일이다. 지질학계의 침묵속에 환경단체가 자연사를 왜곡한 결과다. 수천 년 전의 신비를 가진 우포늪으로 표기하는 당당함을 통해 자연늪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또 밀양의 땀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사명대사비 역시 날조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누가봐도 기온차이에서 오는 결로현상을 두고 국가에 위난을 알리는 징조라며 사명대사의 영험과 신비를 덧칠하고 있다. 주변 일대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비석이나 시멘트벽 가정집의 마루에 있는 다듬잇돌 할 것 없이 마을 전체가 결로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무슨 영험이며 국가의 위기상황을 예견하는 것인지 발상이 놀랍다. 위기를 조장하는 혹세무민이다. 우리의 문화재에 얽혀 있는 이야기도 과장과 신비로 점철돼 있다.
삼국유사 역시 책 전체가 상징성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을 정도로 오늘날의 용어로 보면 스토리텔링의 원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역사적 사료를 무시하고 전개되는 무리한 스토리텔링에 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가꾸어 가야한다. 관광용 역사만들기는 해당 자치단체장의 치적에 불과하며 소요되는 예산은 낭비일 뿐이다. 이제 관광객도 유명 맛집의 구별만큼 현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