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문화의 원향(原鄕)이라 불리는 경주에서 우리 문화와 정신의 근원을 탐구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신라얼문화연구원(원장 정형진)’이 지난 1일 개최한 제15회 전국 학술대회는 ‘훈민정음과 홍익 풍류’를 주제로 전국의 학자와 예술인, 시민 연구자 등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경주를 중심으로 지속돼 온 풍류도 연구의 흐름을 집약하는 동시에 오늘날 한국 정신문화의 방향성을 다시 묻는 자리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훈민정음과 풍류도, 전통 사상과 예술, 나아가 종교 간 소통까지 아우르며 한국 사유체계의 본질을 짚어본 자리였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를 더했다. 특히 이번 대회는 유교·불교·선도(仙道)를 중심으로 논의돼 왔던 기존 풍류도 연구의 범위를 넘어 기독교계 인사들까지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신라얼문화연구원 정형진 원장은 “그동안 풍류도를 말할 때 흔히 유·불·선 삼교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왔지만 이번에는 기독교 신학자와 목회자들도 함께 참여해 보다 폭넓은 정신문화의 대화를 시도했다”고 설명했다.정 원장은 또 “자비를 들여 참가하며 15회째 학술대회를 이어오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학문과 정신문화에 뜻을 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 풍류도의 철학을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이번 학술대회는 ‘풍류인 현묘한 길을 걷는 사람들’ 전국 모임과 함께 마련됐다. 학술 발표에서는 김현문 철학 박사가 좌장을 맡아 진행하고 4명의 발표자가 각각‘훈민정음 해례본과 우리 소리’, '훈민정음은 4차원 음악 문자’ 등을 주제로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가장 큰 관심을 모은 발표는 배일동 명창의 ‘훈민정음 해례본과 우리 소리’였다. 미국 카네기홀 공연을 비롯해 세계 23개국에서 공연과 강연을 펼친 배 명창은 한국 문화 속에 담긴 수리 철학과 우주 질서를 설명하며 훈민정음의 원리를 음악과 연결해 해석했다.그는 “한국 문화는 천문과 자연의 물리를 그대로 따른 문화”라며 “천지인(天地人)의 삼재 사상과 원방각(圓方角)의 질서, 시작과 과정과 결과라는 정반합의 원리가 한국 문화 전반에 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훈민정음의 초성·중성·종성 체계 역시 삼수 분화 원리에 기반한 것”이라며 “한국의 언어와 음악, 전통문화 속에는 고대 수리 철학이 지금까지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 명창은 특히 “우리 조상들은 삼신(三神)의 조화 속에서 생명이 탄생한다고 여겼으며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홍익 정신이 한국 문화의 중심에 자리해 왔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이어진 발표에서 김상범 작가는 ‘훈민정음은 4차원 음악 문자이다’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글을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닌 음악적 질서를 품은 문자로 해석했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강조하는 바른 음은 단순한 발음 기호가 아니라 음정 질서에 부합하는 음악적 소리”라며 “훈민정음은 소리와 음악의 원리를 함께 담아낸 통합적 문자 체계”라고 설명했다.이어 김명식 사상가는 ‘우리 말의 얼, 뜻, 넋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한국어 속에 담긴 정신성과 철학을 조명했다. 우리말이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담아온 문화적 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우실하 교수는 ‘훈민정음 제자 원리’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한글이 음성을 기록하는 기능을 넘어 예술적 아름다움과 우주적 질서를 담고 있는 문자라고 설명하며 '한글 만다라'와 다양한 디자인 사례를 소개했다. 또 “한글은 동양 사상에 기반한 우주 원리를 담고 있어 현대 디자인과 문화 산업에서도 높은 활용 가능성을 지닌다”고 전망했다.학술대회 둘째 날인 2일에는 ‘경주 남산 열암곡 부처를 찾는 답사’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신라 불교문화의 현장을 직접 걸으며 풍류도의 역사성과 정신세계를 체감하는 시간을 가졌다.이번 행사는 거창한 외형이나 지원 중심의 학술행사와는 다른 결을 보여줬다. 대규모 예산이나 형식적 행사보다 학문과 문화에 대한 순수한 문제의식으로 전국의 연구자와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번 학술대회는 훈민정음을 단순한 문자 창제의 성과가 아니라 한국인의 우주관과 음악성, 공동체 정신이 응축된 문화 원형으로 바라보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풍류도를 통해 서로 다른 사상과 종교, 학문과 예술을 연결하려는 시도 역시 한국 정신문화가 지닌 통합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얼문화연구원은 정형진 원장을 중심으로 신라의 전통사상이자 한국 사상의 핵심으로 평가되는 ‘풍류도’를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시민강좌와 답사 등을 이어오고 있는 단체다. 통일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역사관과 정신문화를 정립하고 함께 사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우리의 얼과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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