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 하늘같은 가없는 은덕을 어찌 닿아 갚을까’ 조선 중기 문신인 송강 정철의 시조입니다.    유교가 정치 사회의 근간이던 당시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임금과 스승과 부모의 은혜는 같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효(孝)는 가정생활의 금과옥조였고 그곳을 행한 사람을 칭송하여 다른 이들이 거울로 삼게 했습니다. 자식은 낳고 기른 부모의 은덕을 평생 갚아야 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식의 자식은 그 부모에 대하여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습니다. 우리 설화에 유난히 효자효녀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가정 윤리에서 효의 실천을 으뜸으로 쳤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효를 실천하는 것이 나쁘다, 불필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부모에 대하여 사랑과 존경을 넘어 감히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도 말라는 것으로까지 도덕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서 갈등의 소지가 생깁니다. 현대문학 초기의 우리 소설에 부모와의 불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자주 등장하는 데는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작용했을 법도 합니다.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효도의 기본으로 삼다 보면 자녀의 자율적 선택이나 독립성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과거의 역사가 되었지만 신인류니, X세대니, MZ세대니 하는 젊은 세대들로 세대교체가 될 때까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조선시대적 윤리 도덕은 우리 생활을 은근하게 지배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다지도 견고하게 새겨 받들던 삼강오륜은 세대가 바뀌면서 슬며시 서구의 개인주의에 밀려나고 조부로부터 3대가 한 집에 살던 대가족도 해체되어 부부와 자녀 위주의 핵가족 형태로 단촐해집니다. 함께 살면서 부모를 극진히 섬기던 효심도 자연히 자녀들을 향한 내리사랑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더구나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윗세대에 비해 지금은 모든 면에서 윤택하고 여유로워졌으니 자녀에 대한 사랑에 물질적 지원도 아끼지 않습니다. 부모의 관심이 자녀 양육과 교육에 집중됩니다.    과거에 비해 자녀의 수가 현저히 줄고 경제 여건도 좋아지니 학교와 같은 공동체 생활에서 소위 ‘내 아이 기 죽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며 부모 아닌 다른 어른들의 상식적 훈육을 거부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자녀의 교육활동과 교권에 대해 선을 넘는 개입을 하려거나 사소한 것에도 민원을 제기하는 등의 부정적인 현상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더구나 학교 운동회나 체육대회조차 학교 주변 주민들의 소음 민원으로 폐지하거나 학년 단위로 규모를 축소하여 실시하고 점심시간에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서 하는 공놀이도 다칠 위험이 많다는 부모들의 반발로 금지시키는 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여러 교육활동에서 자신의 아이가 상을 받지 못하면 소외감을 느낄 것을 문제 삼아 공개적인 상장 수여를 반대하고 심지어 교사가 학생의 문제지를 채점할 때 틀린 답에 빗금을 그어 표시하는 것이 아이의 자신감을 저하시킨다고 빗금 아닌 다른 형태의 표시로 바꿔달라는 웃어넘기기도 애매한 민원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물론 모든 학부모나 모든 주민이 다 그런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주장이 강한 소수 의견에 조용한 다수의 생각은 묻혀버리기가 십상이지요. 내 아이에 대한 맹목적 내리사랑이 간절해서 그러리라고 짐작하더라도, ‘우리의 아이들’의 미래보다 ‘내 아이’의 현재 감정에만 시선을 두는 부모의 근시안적 시선이 오히려 내 아이의 내적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를 한번쯤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학교 현장에서 수학여행이나 소풍 같은 체험활동이 축소되는 현실에 대해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란 대통령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지요. 2022년 교외 체험활동 중 일어난 학생 사망사고에서 인솔교사에게 법적 책임을 지운 사건이 빌미가 되어 일선 학교에서 소풍, 수학여행과 같은 체험학습활동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는 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인솔교사의 안전사고 책임 범위와 법적 보호 장치 없이 그대로 체험학습을 실시하는 것은 무리라며 일선 교사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감상적 비판보다는 현실적 제도 보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겠지요.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혈연 혹은 인연이 맺어준 관계를 기념하는 날이 몰려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행복하고, 어버이와 스승은 감사와 존경을 받고, 부부에게는 사랑이 더 돈독해지는 그런 5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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