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하고 치밀치 못하여 걸핏하면 중요한 핵심을 간과하곤 한다. 대인관계 시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를 처음 대했을 때 상대방이 진실하고 순수해 보이면 겪어보지도 않고 덜컥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곤 한다.    이는 별다른 경계심 없이 타인을 잘 믿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사람을 처음 대하면 수개월 혹은 수 년 동안 지내며 상대방을 탐색한단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일엔 매우 서투르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닿으면 그 순간부터 호감을 갖기 예사이다. 얼마나 단순한가. 이러다가 가끔 그토록 믿었던 상대방의 그릇된 언행을 대할 땐 경솔함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힐지언정 천성이 타인을 의심 할 줄 모른다. 뿐만 아니라 한번 신뢰한 사람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소소한 인격의 흠결 따윈 마음에 두지 않는다. 또한 믿는 사람에겐 상대방을 위하여 무엇으로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 이런 필자의 성품을 잘 아는 친구들은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바보같이 산다며 뜯어말린다. 검은 머리 가진 짐승은 진심을 다하여 잘해줘도 그 고마움을 모른다는 말까지 건넨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살벌하다 하여도 어찌 타인을 믿음 없이 대할 수 있으랴. 진심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만큼 상처받는 일은 없잖은가. 불신은 남이 미덥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느 경우엔 생각의 차이, 즉 가치관이 서로 달라서일 수도 있다. 하긴 하다 못하여 부모 자식 및 형제지간에도 어떤 사안에 대하여 각자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긴 하다. 이런 이치를 외면한 채 상대방도 매사가 다 내 마음 같으려니 믿었다간 낭패 당할 수도 있다. 신망이 두터웠던 타인일수록 예상을 벗어난 무례함을 대할 땐 몹시 당황하고 실망하기 예사 아니던가. 주관이 다르고 사유(思惟)가 각자 틀린데 어찌 타인이 내 마음과 똑같을까? 어느 땐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도 서로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인해 결혼 초엔 싸움이 잦곤 하다. 이는 각자 자라온 환경과 사고(思考)가 달라서 빚어진 결과이다. 어느 지인은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으로 괴롭다고 하소연해 왔다. 자신은 한 가문의 맏며느리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무던히 애쓰지만, 정작 당사자인 시어머니는 아예 그녀를 맏며느리로서 신뢰를 안 해 매우 섭섭하다고 했다.    대신 손아래 동서에겐 살갑게 대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란다. 평소 동서는 시부모님들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자신이 봐도 애교도 많다고 했다. 이와 달리 지인은 성격이 무뚝뚝하여 마음에 없는 언행을 못하는 게 단점이란다. 또한 지인 동서는 친정이 잘살아서 결혼 할 때 서울 강남 한복판에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혼수품으로 갖고 왔다고 했다. 반면 지인은 수십 년 전 결혼할 당시 갑자기 기울어진 집안 형편 탓에 그야말로 일명 참빗 한 개 옆구리에 끼고 결혼 했다고 한다. 이 말 끝에 지인은 비록 자신은 시댁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아도 시부모는 믿는 눈치였다. 시어머니가 물질로 사람 됨됨이를 저울질 할 분은 절대 아니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자는 결혼 하여 시댁 식구들로부터 인정을 못받을 때만큼 서러운 게 없다. 특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존재해온 터이다. 오죽하면 예로부터 “시어머니 마음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라는 말도 회자 될까?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오히려 시댁 식구들이 며느리 눈치 보는 세태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예전과 달리 자기주장이 강하여 목소리가 큰 게 사실이다. 어느 경우엔 시부모들이 손자가 보고 싶어도 제대로 못 본단다. 이는 며느리가 시댁 가기를 꺼려해서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모든 젊은 여성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지니진 않았다. 맞벌이를 하느라 가사와 육아에 지치면서도 사람 된 도리,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의무를 다하려고 시댁 집안 대소사를 외면하지 않는 착한 며느리들도 많다. 이를 두고 볼 때 불신이 만연한 세태라고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 만이라도 서로 신뢰가 쌓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만큼 중요한 게 없다. 이는 세상살이의 기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령 어느 식당을 정할 때 우선적으론 그곳의 음식 맛을 믿으면 선택하기도 한다. 이로보아 인생사에서 신뢰만큼 중요한 게 없다. 신용(信用), 신의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야말로 복지 국가가 아닌가. 자식 교육만 해도 그렇다. 자식들은 부모가 믿는 만큼 성숙해지고 사람다워진다. 그러기 위해선 어린 날부터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 신의(信義), 인정(人情), 신뢰(信賴), 긍정적인 생각 등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아이들에겐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올바른 삶의 지침이 되고도 남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 딸들에게 행했던 이러한 인성 교육은 필자 또한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대물림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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