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19~20일, 경북 안동에서 열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만남은 단순한 외교 일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왜 하필 안동인가. 이 질문 속에는 오늘 우리가 다시 마주해야 할 역사와 문화의 본질이 담겨 있다. 안동은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다. 고려의 시작과 끝을 함께 품은 도시다. 930년 고창전투에서 왕건은 안동 호족들의 도움으로 후삼국 통일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고, 그 승리 이후 ‘동쪽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안동(安東)이라는 이름이 내려졌다. 반대로 고려 말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공민왕은 마지막 피란처로 안동을 선택했다. 왕조의 시작에도 안동이 있었고, 왕조의 마지막 순간에도 안동이 있었다. 그렇기에 안동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인의 기억과 국가 정체성이 응축된 상징 공간이다. 몽골 침략과 홍건적의 난, 왜구의 침략, 고려의 몰락을 모두 견뎌낸 도시이며, 조선 시대에는 퇴계 이황의 성리학 정신이 꽃피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가 되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과거의 갈등을 넘어 미래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40여 년간 문화관광 분야를 연구하고 강의하며 학회와 지방정부·공기업 등 관광행정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나름 한국 관광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밤을 새워 자료를 읽고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며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꼈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인 이해였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기억의 주도권’이라는 문제였다.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은 단지 영토를 잃는 일이 아니다. 기억과 해석, 언어와 시선까지 빼앗기는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역사와 문화조차 타인의 프레임 속에서 바라보도록 길들여져 왔다. 경주 관광의 출발 역시 식민지 전시 행정의 연장선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최근 K-컬처와 K-관광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정신까지 온전히 우리의 시선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돌아볼 문제다. 외형적 성장만으로는 문화의 뿌리를 지킬 수 없다. 이제 관광도 단순한 소비와 방문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정신을 어떻게 해석하고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안동은 중요한 답을 보여준다. 안동은 지금도 고려를 기억한다. 차전놀이의 함성 속에, 놋다리밟기의 노래 속에 천 년의 시간이 살아 있다. 역사는 박물관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기억 속에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안동은 증명하고 있다.이번 안동 회담 역시 단순한 외교 뉴스로 끝나서는 안 된다.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미래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기억의 외교’, 그리고 역사 해석의 주도권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후배 세대에게 남겨줄 것은 유적지의 입장권 수입이 아니라, 그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안동의 낙동강은 천 년의 시간을 품고 오늘도 흐른다. 그리고 지금 그 땅 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 장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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