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효양산(孝養山)에는 신라 헌덕왕 9년에 태어나 효공왕 때 벼슬이 신라 육두품의 으뜸인 아간(阿干)에까지 오른 이천서씨(利川徐氏)의 시조 서신일(徐神逸)의 묘가 있다. 그의 묘지와 후손들의 번창에 대하여는 사슴의 보은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서신일은 신라의 국운이 어지러워지자 아우 서신통(徐神通)과 더불어 고향인 이천에 들어가 교육기관인 희성당(希聖堂)을 짓고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이니 세인들은 그를 서처사(徐處士)라 불렀다. 
 
고려 말 익재 이재현이 지은 비문에 의하면 서처사가 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화살에 맞은 사슴이 다급하게 달려와 벌벌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화살을 뽑아주고 나무더미 속에 숨겨주었더니 사냥꾼은 사슴을 보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갔다. 
 
그날 밤 꿈에 한 신령(神靈)이 나타나 하는 말이 “사슴은 나의 아들인데 그대의 은혜로 목숨을 건졌으니 그의 후손 대대로 높은 벼슬에 오르게 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사슴이 나타나 산의 정상 부위에서 앞발로 땅을 파면서 자꾸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다 아! 하고는 그곳이 곧 명당 길지임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이미 80이 되었으나 후손이 없어 늘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의 몸에 태기가 나타났고 세월이 지나 아들을 얻게 되었으니 그가 곧 고려 초기의 재상인 서필(弼)이었으며 필의 아들이 희(熙)이고 희의 아들이 눌(訥)이었다. 
 
이들 3대가 신인의 말대로 서필은 태사내의령(太師內議令: 종1품)이 되었으며 서희(徐熙-내사령 종1품 수상직)는 고려의 이름난 외교가이며 문장가로 문무겸전한 명장이었다. 
 
그의 아들 서눌(徐訥)은 성종 15년 문과에 장원하여 삼중대광내사령(三重大匡內史令-종1품 수상직)을 지냈고 이 세 사람 모두 고려 종묘(高麗宗廟)에 배향(配享)되었다. 공(公)은 우리나라 서씨의 시조이고 외교의 달인 서희 선생은 공의 손자로 80만 대군의 거란족을 담판으로 물리치고 강동 6주를 개척하여 지금의 압록강을 국경으로 확정한 구국의 영웅이다.
이천서씨는 고려시대에 9대(서필~서릉) 동안이나 재상(정승)을 지냈으며 숙종 때는 참판급(차관급) 이상만 30명이 넘게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꿈에 나타난 신인의 말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묘소는 영동고속도로 이천 톨게이트에서 이천 시내 쪽으로 가다가 두산 OB맥주 못미처 우측방향 산촌리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가면 효양산이 있고 그 정상 가까이에 묘소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은혜 갚은 사슴”이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며 풍수가에선 이곳을 일명 사슴 명당이라 한다. 그는 죽을 때 늙은 나이에 얻은 아들 필(弼)에게 사슴이 알려준 자리에다 장사지내 달라고 유언을 하였으며 그가 죽어 사슴이 알려준 명당에 묻히자 그의 후손들이 번창하기 시작하여 삼한의 명문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곳 효양산은 서처사의 교육과 사슴 일화의 혼(魂)을 살려 효양산(孝養山)으로 이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