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오랜 시간 근현대 문화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하며 지역 문화의 뿌리를 기억하고 되찾는 일을 하고 있는 박경숙 작가('박경숙 ART 연구소’ 대표)가 이번에는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한 개인전 ‘Time, 깊고 푸른’을 선보인다. 
 
전시는 이달 26일부터 6월 2일까지 포항 꿈틀로 문화예술가창작지구 내 다락방미술관과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박 작가의 회화 작품 30여 점이 관람객을 맞이하는 이번 전시는 제목 그대로 ‘시간(세월)’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담고 있다. 인간의 삶과 존재, 그리고 기억의 흔적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하는지를 박경숙 특유의 시각으로 접근해 선과 점의 언어로 풀어낸다.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추상 작품과 구상성이 가미되는 인물화가 전시된다. 추상은 기존 작업의 연장선의 작품들과 함께 점들의 크기와 밝은 색상이 자유롭고 경쾌함을 전해 주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기존의 묵직한 화면에서 한 걸음 나아가 밝은 색채와 다양한 점의 크기를 활용해 리듬감을 살렸다. 
 
구상은 사진(과거)위에 선과 점의 채색방법으로 리얼한 시간적 의미를 보여 주는 작품이 전시된다. 인물의 사실적 재현작품은 물론 사진과 혼용된 인물화와 풍경화도 전시돼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여 준다. 
전시 공간은 두 개의 흐름으로 구성된다. 다락방미술관에서는 인물과 풍경을 바탕으로 한 구상적 화면들이 전시된다. 반면 1층 특별전시실에서는 색채의 울림을 강조한 추상 작업들이 중심을 이룬다. 서로 다른 형식이지만 ‘세월’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다.
박경숙의 작품은 우주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화면을 빼곡히 채운 점과 선은 별의 움직임 같기도 하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생명의 파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삶의 본질을 ‘연속된 점과 선’으로 인식해 왔다. 먼지처럼 미세한 존재들이 이어져 삶의 궤적을 만들고 결국 다시 흩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새롭게 변화된 작업 방식도 눈길을 끈다. 오래된 사진이나 풍경 사진 위에 볼펜으로 수없이 선을 긋고 점을 찍어 나가면서 원래 사진의 이미지가 점차 흐려지고 지워져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이라는 과거의 기록 위에 현재의 시간이 덧입혀지면서 기억은 새로운 감각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작품들은 모든 현상들이 사라진다는 허무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오히려 아련한 감성이 스며있는 울림으로 전달돼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생의 ‘시간’임을 그려낸다.박경숙 작가는 “선을 긋는 최소한의 재료만으로도 충분히 삶의 감정과 사유를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작업은 종이와 볼펜이라는 가장 단순한 재료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행위는 수행처럼 이어지고 화면은 깊은 명상의 공간으로 확장된다.이번 전시는 삶과 존재의 허무를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화면 속 희미해져 가는 형상들은 오히려 더 아련한 감정을 전해준다.
포항에서 태어난 박경숙 작가는 포항대백갤러리와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오랜 기간 학예 업무를 맡으며 지역 미술계 발전에 힘써 왔다. 199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결-존재의 울림’, ‘존재, 깊고 푸른’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내외 단체전 200여 회에 참여했다. 2023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 오픈 스튜디오 ‘Connection’전에 참가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작업세계를 선보였다. 저서 ‘Since 1981, 그때 그림 그 사람’을 출간했으며 현재 박경숙아트연구소장과 다락방미술관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