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에서 인내만큼 좋은 결과를 안겨주는 일은 없다. 편하고 안락한 삶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생각처럼 삶이 평탄하진 않다. 이 때 인생행로에서 힘든 고비가 닥쳐올 때마다 그것을 외면 한다면 어찌 될까? 아마도 미물만도 못한 삶이 될 것이 뻔하다. 하다못해 식물도 자신의 열매를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인내심을 지닌 채 버틴다. 일예로 오이만 해도 그렇다. 가끔 삶에 지치고 힘들 때면 시누대에 의지해 연하고 가냘픈 줄기를 뻗치며 노란 꽃을 피우는 오이 넝쿨을 떠올리곤 한다. 처음엔 노란 색의 꽃이 피었다가 지고나면 곧이어 작은 열매가 줄기 곳곳에 맺힌다. 이렇게 열린 오이는 날이 갈수록 길고 살이 통통히 오른 실한 모습으로 변모하여 가느다란 줄기에 주렁주렁 제 몸을 매달고 있다. 이 때 넝쿨은 자신의 줄기와 꼭지가 메마를 때까지, 노각이 된 오이를 꽉 붙잡고 좀체 놔주질 않는다. 이로보아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라도 결실을 지키려는 오이 넝쿨의 의지가 참으로 놀랍다.   하물며 식물도 이러할진대 어찌 일명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이 스스로 자식을 해치는가.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뉴스 내용에 할 말을 잃고 만다. 자신의 자식을 리모컨으로 머리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한 친모 및, 어린 자식에게 폭행을 휘둘러서 숨지게 한 아버지 등,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아동 학대 범죄들이 연이어 뉴스를 도배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부모도 자식도 안중(眼中)에 없는 몰인정 한 세태라고 하지만,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런 잔인무도(殘忍無道)한 일을 행할 수 있으랴.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자식을 그것도 때려서 죽인단 말인가. 깃털로 때려도 상할 어린 몸 아닌가. 타인도 못할 짓인데 하물며 부모로서 어린 자식에게 힘껏 폭력을 가하다니…. 두개골이 파손되고 갈비뼈까지 부러지는 등 차마 입에 올리기 조차 하늘이 두려울 일을 어린 자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처사는 짐승만도 못하다. 짐승도 제 새끼를 돌볼 줄 알잖은가. 자식을 양육 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태중에 품은 자식이 태어나면 건강하고 품성 반듯하게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노력,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육아가 힘들다고 자식을 방치하거나 돌보는 일에 소홀하다면 아동학대가 분명하다. 어찌 보면 부모로서 갖춰야할 덕목 중 한가지인 인내심 결여이기도 하다. 아이는 한순간에 부쩍 자라지 않는다.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숱한 시간을 자식 곁에서 성장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다. 아이가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서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만을 소원 하며 말이다. 만약 아이 양육과 뒷바라지가 힘들다고 부모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한 채 자식을 내팽개친다면 그 아이가 과연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자, 버팀목이며 태양과 같은 존재 아니던가. 세상 만물은 태양 없이는 단 한시도 생존 할 수가 없다. 아이에게 부모는 그런 존재이다. 특히 어머니는 아이에게 가장 최초의 선생님이기도 하다. 세기적 위인들 뒤엔 항상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필자의 어머니도 그러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잠깐 시골에서 살았었다. 돌이켜 보니 어머닌 필자에게 끈기를 불어넣어줄 의도에서 행한 일인 듯하다. 어느 초여름 텃밭에 심은 어린 열무 싹을 한 소쿠리 솎아서 필자에게 다듬으라고 했다. 이 때 자잘한 크기의 채소를 다듬는 일이 참으로 지루했다.   한참을 다듬던 필자는 열무 절반을 어머니께서 잠시 외출한 틈을 타 뒤꼍 밭에 묻었다. 그러자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닌 다듬은 열무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번엔 두 소쿠리 가량의 어린 배추를 솎아서 필자에게 다듬으라고 건넸다. 그리곤 먼발치서 필자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억지춘향으로 하는 수없이 그 배추를 또 다듬었다. 얼마 쯤 시간이 흐르자 등도 당기고 허리도 아파왔다. 마지못해 일을 하려니 속까지 울렁거렸다. 하지만 몇 시간에 걸쳐서 많은 어린 배추를 다듬었다. 그러자 어머닌 입가에 자애로운 웃음을 머금은 채, “ 얘야 힘든 일도 참고 해내는 습관을 지녀야 어른이 돼서도 하기 싫은 일도 해낼 수 있단다. 깨끗하게 잘 다듬었다.” 라는 말씀을 하였다. 그 이후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지난날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가장 강점인 한번 마음먹으면 어떤 고초도 참고 견뎌내는 뚝심을 지니게 되었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 칭찬을 듣자 왠지 떳떳하진 못했었다. 열무를 땅에 묻었잖은가. 이 사실을 어머닌 진즉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닌 모른 체 하였는 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생전엔 미처 이 일을 솔직히 말씀드리지 못했다. 이젠 고인(故人)이 된 어머니 영전 앞에서 뒤늦은 고백을 할까 한다. 어린 날 다듬은 열무가 양이 적었던 것은 실은 그날 일을 하기 싫어서 일부를 어머니 몰래 땅에 묻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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